길에 나설 일이라는 게 어디 좋은 날 잡고 기다려 주던가. 겨울이고 여름이고 미세먼지와 큰비 따위를 따질 겨를이 없다. 그저 몇 가지 필수품 챙겨 견딜 수밖에. 그중에 모자와 토시와 손풍기가 여름철 집회 '잇템'에 든다. 야구모자부터 세련된 밀짚모자까지 다양한데, 가성비와 착용감 등에서 저 꽃무늬 모자를 따라갈 게 없다. 조경 일이며 밭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써 농사 모자라고도 한다. 얼굴과 목까지 빈틈없이 커버한다. 기미 잡티 걱정을 던다. 길에 앉아 큰소리 뻥뻥 지르고 나면 해고며 차별 걱정도 한시름 던다. 아직은 어색한 카메라 앞에서도 좀 자유롭다. 일단 망가지면 되돌리기 어려운 게 피부라더라. 그 좋다는 비싼 화장품과 반짝 유행하는 엘이디 마스크라고 뚝딱 별수 있겠나.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저 꽃무늬 모자야말로 피부를 지키는 똑똑한 선택이다. 내 노동은 소중하니까, 일터에서 차별받고 잘릴 위기에 선 사람들이 노조 깃발 아래에 든다. 곧잘 길에 나서 비정규직 철폐, 언젠가의 약속을 구호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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