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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에 대한 공격법 -르노삼성차노조 파업을 읽으며

기사승인 2019.06.11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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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면서 쓴다. 수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르노삼성자동차노조의 임단투를 포털 뉴스로만 읽어 왔다. 10일에는 <“노조 논리 모르겠다” 파업지침에도 르노삼성 근로자 70% ‘출근’>(머니투데이), <“신뢰 깨졌다” 집행부에 등돌리는 르노삼성 조합원>(이데일리) 등으로 파업투쟁을 이끌고 있는 노조 집행부에 대한 비난을 읽었고, 며칠 전에는 <르노삼성 1년째 갈등 … 파업 첫날 노조원 ‘셋 중 둘’ 출근>(JTBC), <르노삼성차 파업선언 후 첫 근무일 66% 출근 … 공정별 조업 편차 커>(경향신문), <르노삼성 노조 “전면파업” 조합원들 “고마 하입시다”(중앙일보) 등으로 파업 참가율이 저조하다고 읽었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언론이 쏟아 내는 뉴스를 읽는 나는 르노삼성차노조가 조합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파업을 하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 지난달 21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잠정합의안을 51.8%의 반대로 부결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노조는 새로이 사측에 협상을 요구해 교섭을 추진해 왔던 것이고. 도대체가 조합원들이 “노조 논리 모르겠다”고 여길 상황이 아니고, “고마하입시다(그만합시다)”라며 임단투를 그만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2. 파업은 불법이고 범죄였다. 그런데 르노삼성차노조 파업에 대해선 불법과 범죄라는 비난은 없다. 교섭대표노조가 임금인상 등 임금·단체교섭을 하다가 조정절차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치고서 하는 파업이기 때문에 시비할 수 없는 것이다. 주체·목적·절차·수단과 방법 등에서 파업에 대한 온갖 금지와 제한을 통해 규제하고 있는 이 나라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조차도 감히 부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같으면, 으레 따라붙었던 ‘불법’파업이라는 자본과 권력의 공격, 그리고 언론의 비난 공세는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겠다. 하지만 파업은 여전히 불편하다. 가뜩이나 어렵다는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고 야단이다. 언론은 판매량이 급감하고 내수도 꼴찌로 주저앉았다며 <“브레이크가 없다” 르노삼정의 추락 … 손 놓은 노사>(노컷뉴스), <자동차 1차 협력사 20곳 무너졌다>(한국경제) 등으로 법이 아닌 경제로 노조 파업을 공격하고 있다. 이는 경제지나 이른바 보수언론만이 아니다. 진보언론조차도 “생산 차질로 인한 불안감이 커지자 르노삼성에 생산을 위탁한 닛산이 맡긴 물량 일부를 빼가는 등 후유증이 점차 커지고 있다”며 “지역 경제계는 ‘3년째 이어지던 르노삼성의 무분규 협상이 깨지고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협력업체의 절반 이상이 몰린 부산·경남지역 경제가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조속한 타결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한겨레, 2019년 4월11일자). 르노삼성차노조 파업 뉴스를 읽다 보면 나도 불편하다. 회사·협력업체 등에 커다란 손실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보도를 읽는 것이 그렇다.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파업이 아니라, 그렇게 보도하는 언론이 불편하다.

3. 르노삼성차노조 임단투 뉴스를 읽다 보면, 파업에 대한 공격은 차고 넘친다. 경제를 내세운 보도는 파업 사실에 관한 기사처럼 쓰고 있지만 파업이 기업에, 경제에 불편하다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파업에 대한 목적, 근본적인 원인을 자세히 설명하는 기사는 찾기 어렵다. 그러니 노조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없는 일반 국민은 파업이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국적회사인 르노가 다른 나라로 생산물량을 돌리면 어쩌냐고, 중소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생산 차질로 막대한 임금 손실을 받는 것이 아니겠냐고, 부산·경남의 지역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언론보도에 따라 불편이 춤을 춘다. 그리고 이를 인용해서 언론은 그 보도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파업 뉴스는 불편부당을 찾아보기 어렵다. 어제는 불법으로 매도했다면, 오늘은 경제로 난도질해 대는 것이 그야말로 편파적이다. 사실보도를 가장한 파업 패기다. 르노삼성차노조가 회사와 협력업체, 경제에 좋지 않은 파업을 하고 있다는 것만 알 뿐, 구체적으로 어째서 아직도 파업을 해야만 하는지에 관해서는 알지 못하게 온통 파업 때리기다. 파업에 대한 보도라면 어째서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인지, 노조는 무슨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어떠한 전술로 사측을 압박하고 있는지, 과연 그 요구가 조합원·노동자의 권리에서 차지하는 의의는 무엇이고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도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가 있으며, 나아가 노조가 구사하는 파업 전술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어떻게 해야 신속히 요구를 관철하고 파업을 종결지을 수 있을 것인지 등에 관해서 노조 파업 자체를 보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없다. 파업 보도에 파업 자체는 없다. 파업이 끼치는 사용자 회사의 손실, 경제 등만 있다. 그러니 파업은 손실이고 나쁠 수밖에 없고, 포털의 파업 뉴스에는 노조를 욕하는 댓글로 넘쳐 난다.

4. 일부 언론은 노동전문가를 인용해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강경 투쟁노선에 노동자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머니투데이, 2019년 6월9일자). “르노삼성에 따르면 지난 7일 전면파업 첫날 부산공장 임직원 2천252명 중 1천532명(68%, 오전·오후 통합)이 정상 출근했다. 출근 대상 조합원 1천854명 중 1천134명(61.2%)이 집행부의 파업 방침을 외면했다”고 사측 보도자료를 인용해서 보도하면서,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집행부와 조합원이 생각하는 투쟁이 서로 다르다”며 “조합원은 업계가 안 좋은 상황에서 더 이상 강경책으로는 해결책 찾기가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고,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관계는 적절한 지점에서 타협과 상생을 도모해야 하는데 (이번 르노삼성차노조는) 현실 여건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투쟁 일변도로 나섰다”며 “더 이상 현장 노동자들이 이를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고, 투쟁으로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는 있지만 결국은 기업과 노동자 모두 윈윈할 수 있어야 한다. 르노삼성 사례로 노동계는 노사관계 방향성이나 투쟁방식을 고민해 봐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파업 자체를 보도하는 것이긴 한데, 투쟁의 시대는 지나갔다며 노조 파업을 비난한다. 교수가 얼마나 파악하고 있기에 르노삼성차노조 파업을 두고서 조합원이 외면하는 강경투쟁 일변도였다고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기사에서는 파업 참가율을 근거로 했다고 보인다. 파업은 의지이기도 하지만 기술이기도 하다. 파업 찬반투표에서, 잠정합의안 찬반투표에서 르노삼성차노조 조합원 의지는 분명했다. 의지가 곧바로 행동이 되지 않는다. 의식과 실천이 동시적이지 않듯이 파업이라는 조합원들의 집단적인 행동에는 기술이 요구된다. 파업을 저지하려는 사용자 자본의 압박을 뚫고 조합원들이 행동에 나서게 할 노조의 세심한 전술이 때로는 파업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물론 찬반투표를 할 때 조합원들의 의지가 그 뒤 사용자 자본과 언론의 공세에 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그 공세를 맞서는 교육과 홍보 등 선전의 기술에서 밀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투쟁을 접고 노조가 사측에 윈윈으로 타협하자고 했으면 르노삼성차 자본은 노조의 요구를 들어줬을 것인가. 그동안 르노삼성차에서 임단투는 임금인상 외에 외주화와 전환배치, 노동강도 문제 등이 주된 쟁점으로 사측은 ‘협의’를 노조는 ‘합의’를 내세워 지난해부터 계속해서 타협을 위해 협상했던 것이고, 이에 대해 지난 5월16일 노사는 기본급 동결에 100만원 보상금 지급, 중식대 3만5천원 인상 외에 전환배치 프로세스 도입 등이 포함된 잠정합의를 했다. 언론에 보도된 이런 잠정합의안을 보면 노조가 윈윈하기 위해 크게 양보해 타협한 것이 아닐 수 없고, 그러니 찬반투표에서 조합원들은 반대로 부결시켰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잠정합의안이 부결되고서 추가로 교섭을 한다고 해 봐야 우리 노동현장에서 교섭 실태를 보면, 잠정합의안에서 크게 상향된 수준으로 노사합의안이 마련될 가능성이 낮고 이는 르노삼성차노조도 잘 알고 사측에 교섭을 촉구해 왔을 것이다. 노동전문가 교수가 하라는 대로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파업을 접는 것 말고는 말이다. 그런데 파업을 해도 들어주지 못하겠다는 사용자가 파업을 하지 않겠다는 노조의 요구는 순순히 들어줄까. 간간이 노조가 무쟁의 선언을 하고 사측이 위로금이나 임금인상 등으로 화답했다는 뉴스를 읽는다. 그러나 일반화할 수는 없다. 만약 그랬다면, 헌법에 단체행동권을 단결권·단체교섭권과 함께 노동기본권으로 보장해 놓지 않았을 것이고, 그저 노사가 윈윈으로 타협하기 위한 단결권·단체교섭권만 보장했을 것이다.

5. 이 나라에서 파업은 타협을 위한 것이었다. 임단투는 임단협을 위한 것이었다. 노조 파업이 위력적이면 위력적일수록 타협인 임금 등 단체협약 체결은 손쉽게 이뤄질 수 있다. 위력적인 파업을 저지하겠다며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는 사용자는 없다. 임단투에서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주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용자를 볼 때면 노동자들은 자본이 자신들의 노동을 먹이로 하는 이윤의 짐승으로 보인다. 이런 사용자 자본을 상대로 해서 파업을 접고서는 윈윈으로 타협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 노동운동은 파업의 자유를 노동기본권으로 쟁취해 왔다. 오늘 결사의 자유 등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파업 없이는 노동자 권리를 위해 사용자와는 타협하기 어렵다고 알기 때문이다. 사실 자본의 세상에서 타협을 원한다면, 파업을 응원해야 한다. 그런데 핵심협약 비준으로, 노조법의 전면 개폐로 파업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 전면적으로 보장된다고 해도 나는 걱정이다. 불법과 범죄라며 파업을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 르노삼성차노조 파업에 대해서처럼 경제를 내세운 비난은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이 세상에서 경제의 군주는 자본이다. 파업에 대한 경제논리의 비난은 파업에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데 오늘 이 나라에서 언론은 경제의 논리로 세상을, 파업을 재단하느라 불편부당을 찾을 수가 없다. 이 나라에서는 내일도 걱정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bory@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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