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혜영 공인노무사(노동건강연대)

산업재해보상 신청 관련 상담은 완전 쉽거나 완전 어렵거나 두 가지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으면 그대로 신청서를 제출하면 되고, 질병일 경우는 까다로우니 조력자를 구해 주는 방식으로 해 왔다. 특히 쉬운 경우, 그러니까 산재보험 적용 대상자임이 명확해 보이는 경우 근로복지공단의 존재를 알려주고, 검색하면 정보가 매우 많다고 가닥만 전해 주면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 가장 큰 벽은 ‘근로복지공단’이란 이름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별로 들을 일 없는 기관 이름이기 때문이다. 또박또박 두세 번 불러 준다.

얼마 전 거제도에 출장을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 통영 카페 계단에서 넘어졌다. 전날 조선소 노동자들과 늦게까지 북 콘서트를 하고 하룻밤 자고 올라오는 길, 책 저자와 함께 전날 행사도 정리하고 바다도 좀 보고 가자고 길목 통영의 한 카페에 들른 터였다.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우두둑 소리가 난 발목을 쳐다보며,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망했다. 바쁜데.

통영에서 응급실을 갔다가 주말을 지내고 월요일 서울에 있는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다행히 뼈는 괜찮다. 반깁스를 풀어 보니 발목은 멍들어 온통 새까맣고 많이 부어 있었다. 의사에게 낫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물으니 치료를 해 봐야 안다고 한다. 빨리 낫는 게 중요하니 의사가 시키는 대로 일단 안 움직이는 것을 중심으로 사고하기로 했다. 뇌와 입, 손가락은 바쁘게 구멍 난 일정을 정리하고 사과를 해 댔다. 일을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가져와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있는지 머리를 굴리지만 결국 왜 조심하지 않고 다쳤냐는 자책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자책을 끝내고 산재보상을 신청하기로 했다. 이왕이면 직접 하기로 했다. 두뇌를 하얗게 비우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속으로 되뇌면서 천천히 사고를 시작했다. 의사에게 산재신청을 하고 싶다 하니 원무과로 가란다. 가야지, 다 해 준다는데. 그런데 원무과 산재 담당자는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다. 나도 병원을 매일 가는 게 아니니 매번 못 만나다가 2주가 지났다. 치료는 오래 받아야 하니 언제든 만나면 되겠지 생각했다. 몇 가지 기본 정보를 말해 주고, 산재신청서 양식 두 장을 건네받았다. 아니 그런데, 신청서 이름도 산재신청서가 아니다. 증인도 적어야 하고, 사업장 관리번호도 적어야 했다. 사무실에서는 진즉에 산재를 신청하자고 한 터라,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양쪽 다 첫 경험이라 우왕좌왕한다. 이 서류를 봐야 나오나요? 관리번호는 어디 있을까요? 서로 난리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요양신청서를 들고 갔더니, 다친 곳이 거제도면 그쪽 관할로 내야 한단다. 그럼 제가 내나요? 하니, 자료를 준비해 줄 테니 우편으로 보내라고 대답한다. 병원에서 자료를 준비해 주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일주일인가 지나서 원무과 담당자를 다시 만났다. 왜 다른 병원은 산재신청을 해 준다는데 여기선 안 해 주냐 물으니, 우리는 안 해 준다고만 대답한다. 근데 사는 데는 서울인데 왜 거제도 쪽으로 서류를 내야 하느냐고 물으니,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더니 그럼 회사 관할로 내잔다. 관할 근로복지공단 주소를 요청해 편지봉투에 적어 등기로 부쳤다. 산재보상 신청에만 한 달이 걸렸다. 그런데 그날 간 약국에서 산재를 신청했다고 하니, 그걸 진작에 해야지 뒤늦게 하면 서류랑 복잡한 게 많다고 말한다. 아니, 현실적으로 산재보상 신청도 회사와 내가 결정을 해야만 할 수 있는데 대체 얼마나 빨리해야 한다는 거지?

그 와중에 딱딱하게 굳은 등 근육은 두통을 불러왔다. 물리치료사에게 말하니, 실비보험 존재를 묻는다. 실비보험으로 도수치료를 받으면 금방 풀릴 거란다. 당장에 도수치료를 받았다. 네 번 정도 근육을 풀었는데, 눕기가 훨씬 수월해지고 왠지 든든한 치료를 받은 것 같다(주변에서 도수치료는 병원 돈벌이로 쓰인다는 둥 비판이 많았지만, 병원에서 권장해 주는 건 왠지 다 하고 싶지 않나).

산재보상 승인이 안 될 분위기다. 통상 거제에서 서울로 오는 길에서 카페가 바닷가쪽으로 너무 떨어져 있어서 그건 출장 범위에 포함이 안 된단다. 아니, 사람이 기계도 아니고. 남해까지 갔는데 아무리 출장이라도 어떻게 바다를 안 보고 오냐는 대답을 불쑥 해 놓고는 제도의 본질을 떠올린다. 카페에서 결국 일 얘길 했다는 말은 해 보지도 못하고.

산재보험은 4대 사회보험 중 하나다. 고용보험·건강보험·국민연금은 사람들에게 꽤나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도움도 주고 이슈도 되는데, 산재보험은 이상하게 존재감이 없다. 아니 나쁜 존재감만 있다고 해야 할까? 왜 같은 4대 보험인데 건강보험은 자동적용이고, 산재보험은 따로 신청해야 하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을까? 병원에선 실비보험 존재 여부만을 왜 그리 물어 댈까? 산재신청 소식을 들은 여러 명에게 질문을 받았다. 회사에 불이익 없어요? 아아.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사회보험제도는 50살이 넘는 시간 동안 이렇게 장벽만 쌓았나 보다. 앞으로 장벽 개수를 제대로 세어 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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