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웅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난달 34살의 젊은 집배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수면 중에 사망했으며 부검 결과는 돌연사라고 보도됐다. 필자가 보건관리를 담당하는 사업장의 노동자였다. 그 사업장은 수년 전에도 보건관리를 했던 사업장이어서 당시 상담 풍경이 기억에 남아 있다. 올해 다시 필자가 소속된 기관으로 재계약이 돼 첫 의사 방문이 예정된 상황이었다. 수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보건관리를 하러 방문을 해도 일과 중에는 정작 집배노동자를 본사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기억, 그리고 사무실 직원 또는 가끔씩 일찍 복귀하는 집배원들만 불특정하게 상담했던 어려움이 생각났다. 집배원들을 어떻게라도 상담하기 위해 검진 유소견자들과 일일이 전화로 상담했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바쁜 배달업무 중에도 대부분 친절하게 전화설명을 귀담아들어 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고가 있은 후 지난해 건강검진 결과와 상담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검진 결과 이상소견이 없었으며, 따라서 그간 간호사와 건강상담도 하지 않았다. 기저질환도 없었고 술· 담배도 하지 않았고 부검소견도 돌연사로만 확인된 상황, 전형적인 청장년 급사증후군으로 보였다.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기여요인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된 바는 없지만 임상적으로 수면 부족과 만성피로 등의 과로를 원인 또는 촉발요인으로 생각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는 것으로 인정된다.

그는 보통 집배원의 배달물량보다 30%가량 많은 하루 1천200개의 편지와 소포를 이동거리가 긴 농촌지역으로 배달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했다고 기록했지만 퇴근시간 이후에도 두세 시간씩 추가노동을 했고, 휴무일에도 근무한 적이 많았다고 보도됐다. 사망 당일 프린터에는 이틀 후 제출할 정규직 채용신청서가 있었다. 일이 너무 힘들다고 자주 애기했지만 “정규직이 되기 위해 끝까지 버티고 있다”고 했다.

사업장을 방문했다. 담당자도 보건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많았다. 과로사를 예방하기 위한 보건관리조치가 있다. 안전보건공단의 ‘장시간 근로자 보건관리 지침’과 ‘뇌심혈관 발병위험도 평가 사후관리 지침’ 및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669조 ‘직무스트레스에 의한 건강장애 예방조치’를 들 수 있다. 장시간 근로자 보건관리 지침에 "1개월간의 근로시간을 파악해 주당 평균 52시간 이상인 경우 근로자의 신청을 받아 보건관리자에 의한 면접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장시간 근무 때문에 힘들어하는 노동자에게 도대체 면접지도로 어떤 조치를 할 수 있겠는가? 뇌심발병도 평가 역시 사고 노동자처럼 기저질환 없는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형태일 때는 효용성이 없게 된다. 기존 규칙 669조에 장시간 근로 등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은 작업일 경우 작업과 휴식을 적절히 배분하는 등 근로시간과 관련한 근로조건을 개선하라고 돼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법상으로 제재가 안 되는 노력규정 또는 훈시규정 성격이다. 결국 매우 상식적으로 과로 자체가 사업장에서 해결 안 될 경우 보건관리는 의미가 미약하며 특히 과로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업장의 과로사 보건관리는 과로조건 개선을 제외하고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단 사업장에는 뇌심발병도 평가 중등도 이상 노동자와 검진 유소견자에 대해 의사 방문주기를 당겨 예전처럼 전화라도 모두 상담을 하기로 했다.

우정사업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과로사한 집배원은 82명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서 집배원들은 하루 평균 10.9시간, 주당 55.2시간을 일하며 연가사용일이 평균 3.4일에 그쳤다. 일반적으로 2017년 기준 집배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천403시간으로 대표적 장시간 노동 국가인 한국 평균 노동시간(1천978시간)보다 425시간 더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됐지만 퇴근 등록 후 무료노동이 지속된다는 보고도 있다. 2017년에는 집배노동자 과로사를 막기 위해 노사정이 참여하는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구성됐고, 지난해 10월 7개 권고안을 발표했다. 적정노동시간을 위한 단계적 2천명 인력 증원, 토요택배 폐지를 위한 사회적 협약, 안전한 일터 만들기, 현재의 비인간적 1인당 적정 배달물량 시스템인 집배부하량 시스템 개선, 조직문화 혁신, 집배원 업무완화를 위한 제도개편, 우편공공성 유지와 질 향상을 위한 재정확보다. 이 중 이행된 사항은 없다. 과로사 예방을 위한 노동시간 개선의 핵심인 인력증원은 올해 1천명 증원이 합의됐으나 경영적자를 이유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담당 사업장 보건관리자로서 우체국의 과로사 보건관리가 앞으로 효과를 거두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인력증원을 통한 노동조건 개선이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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