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이런저런 일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았던 하루, 퇴근길 상념이 짙다. 종일 추적거리던 비가 그치고 저 멀리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빛이 짙었다. 교차로에 빨간불 들어와 급히 멈춰 섰다. '신홋발'이 마음 같지 않아 혼잣말이 툭 튀어나왔는데 과했다. 그래도 맨 앞이구나, 되지도 않는 이유 들어 마음 추슬렀다. 동네 친구 집에 맡겨 둔 아이 생각에 급했다. 어느새 오토바이 한 대가 앞자리 섰다. 배달노동자였다. 중학교 시절 방학이면 신문배달 알바를 했다. 이른 새벽 지국으로 나가 온갖 광고 전단부터 끼워 넣었다. 책처럼 두툼해진 신문을 자전거에 싣고 한겨울 미끄럽던 골목길을 누볐다. 쓱 접어 슉 던지면 이층집 현관 앞에 착 떨어지곤 했으니 일이 손에 붙을 때였다. 반쯤 돌렸을까, 자전거 바퀴가 펑크 났다. 별수도 없어 끌고 걷고 달렸다. 지쳐 돌아가던 길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다른 신문 지국이었는데, 오토바이 내어준다면서 꾀었다. 확 끌렸지만 거절하고 말았다. 오래전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 생활이 길었는데, 그 뒤로 우리 집에서 바퀴 두 개짜리 차 얘긴 금기였다. 곧 신호가 바뀌었고, 오토바이는 치고 나갔다. 곡예하듯 차 사이 좁은 틈을 비집고 달려 멀어졌다. 신호등 맨 앞자리엔 언제나 배달 오토바이가 있었다. 밥 차리기엔 늦어 배달 앱을 뒤적거렸다.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밤늦도록 집 앞 골목에 울렸다. 쓰는 사람은 많은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고,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이 어느 자리에서 말했다. 만나면 누가 식물인간이 됐다더라, 죽었다더라 얘기를 나눈다고도 했다. 불나방에 비유했다. 노조할 권리 보장을 그 앞자리 정치인과 정부 관료에게 호소했다. 신호가 바뀌었고 맨 앞자리 오토바이가 내달린다. 거기 배달통에 책임과 위험을 가득 싣고, 식지 않은 음식을 나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