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정부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입법예고안을 두고 노동계와 노동안전단체가 하는 말이다. 위험의 외주화로 비정규 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르는데 입법예고안이 산재 원인인 외주화를 막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산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 생각도 다르지 않다. 정부에 의견서도 내고 기자회견도 하고 청와대를 찾아 호소도 한다. 제발 하위법령을 제대로 개정하라고. 다시는 김용균 동료들의 죽음을 보지 않게 해 달라고. 태안 화력발전소 노동자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건설노동자 김태규씨 누나 김도현씨, 삼성전자 노동자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제주 현장실습생 이민호군 아버지 이상영씨가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 김미숙 (가)김용균재단 대표

지난해 말 우여곡절 끝에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됐다. 용균이의 죽음에 함께 슬퍼하고 분노한 시민들이 힘을 모아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감히 짐작해 본다. 힘을 모은 사람들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반복해서 노동자가 죽었던 용균이의 일터가 도급금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 참 서운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솜방망이 처벌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면 된다고 위안을 삼았다. 특히 하위법령은 경제계 이익단체들과 보수 야당의 반대에 영향을 덜 받고, 고용노동부가 법의 의미를 최대한 살릴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지난 4월 정부가 내놓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안에서도 ‘죽음의 외주화’를 막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용균이가 하는 일은 도급금지에서 빠진 데 이어 도급승인 대상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도대체 하위법령을 누가 이렇게 쓸모없이 만들어 놓았는지, 어떻게 산업재해를 막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전국의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은 사지에 내몰려 죽거나 다치고 있다. 지금이라도 하위법령을 제대로 보완해서 안전하지 않아서 죽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서 시급히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위험작업을 하청에 떠넘기는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죽음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용균이 죽음 이후에 수많은 죽음과 유가족들의 오열을 마주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죽고, 우체국에서 과로하다 죽고, 노동강도가 너무 세서 죽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유가족들은 바뀌지 않는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계셨다. 이렇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민 어느 누구도 기업의 이윤을 위해 죽어도 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태껏 기업들과 정치권과 정부가 합세해서 그들만 잘사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었고, 노동자들은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노동강도가 너무 높거나 안전하지 않아서 죽거나 다쳤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를 떠날 계획이고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아서 살 수 없다”고 한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내가 스스로 살기 어렵고 앞으로 자식을 낳아도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그 누구라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서민들은 지금 안전하지 않은 작업현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찌들어서 죽거나 다친다. 과로사와 자살로, 너무나 많은 인명피해가 난다. 사회적 대참사다.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산업안전보건법도 보호해 줄 노동자를 고르고 있다. 이런 저런 핑계로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노동자가 늘어 가고, 원청의 책임도 너무나도 넓게 면제해 주고 있다.

국민 생명은 어떤 이유가 됐든 정부가 최우선 순위로 지켜 줘야 한다. 이제 말만 하는 대통령·정부·정치인을 국민은 믿지 못할 것이다. 실천해서 확실하게 노동현장의 안전이 보장되도록 대통령과 정부가 보여 줘야 할 때가 됐다. 아직도 국민 목숨이 산업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는 게 당연하다는 듯 하찮게 버려지고 있는데 정부가 어떻게 “국민을 존중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산업현장의 90% 이상이 경영자나 관리자가 아닌 노동자들인데 혹시 ‘국민 속에는 노동자들은 들어가 있지 않은 건가’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있는 것인데 정부와 정치인들은 더 이상 국민들을 세 치 혀로 농락하고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나에게 약속한 바가 있다. “안전한 작업장, 차별 없는 작업장, 신분이 보장된 작업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안전과 생명을 공공기관 평가 제1 기준으로 만들겠다”고도 말씀하셨다. 또한 국민 앞에서 “안전 때문에 눈물 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게 만들겠다”는 약속도 하셨다. 이 말씀대로 지금 현실을 책임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약속대로라면 용균이 동료들을 살려 내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께서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들 사정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하면 우리 국민 마음도 대통령에게서 당연하게 멀어지게 될 것이다. 국민 모두가 이 나라의 국민이 된 것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문재인 대통령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도 그 뜻에 따라 제대로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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