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정부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입법예고안을 두고 노동계와 노동안전단체가 하는 말이다. 위험의 외주화로 비정규 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르는데 입법예고안이 산재 원인인 외주화를 막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산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 생각도 다르지 않다. 정부에 의견서도 내고 기자회견도 하고 청와대를 찾아 호소도 한다. 제발 하위법령을 제대로 개정하라고. 다시는 김용균 동료들의 죽음을 보지 않게 해 달라고. 태안 화력발전소 노동자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건설노동자 김태규씨 누나 김도현씨, 삼성전자 노동자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제주 현장실습생 이민호군 아버지 이상영씨가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 황상기 반올림 대표

우리 유미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미는 우여곡절 끝에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지만,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직업병에 걸린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그래서 반올림을 만들고 11년을 싸워 왔다. 여러 단체와 수많은 분들이 함께 힘을 모아 주신 덕분에 풀릴 것 같지 않던 삼성 직업병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을 봤다.

지난해 용균이가 죽고, 용균 엄마가 앞장서 싸우면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28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산재 피해 가족들도 함께 목소리를 냈고, 나도 작은 힘이나마 보탰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노동자들의 알권리가 확대되고, 더욱 안전한 현장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직업병으로 몇 백명이 죽어도 처벌받는 사람이 없었다. 삼성 공장에서 불산 누출사고로 노동자가 죽었어도 몇 백만원 벌금이 다였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산재에 책임이 있는 기업과 기업주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기를 바랐다. 노동자가 죽어도 처벌받는 사람이 없으니 기업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청업체 관리자 몇 명이 아니라 권한이 있는 진짜 기업주를 처벌해야 계속되는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를 죽게 만든 기업주를 최소 1년은 감옥살이할 수 있게 한 조항이 결국 빠졌다. 참 아쉬웠다. 그래도 보수야당과 기업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정부도 어쩔 수 없겠다고 이해했다. 강력한 처벌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별도로 만들자고 다짐했다. 힘을 모아 보자고 산재 피해 가족들이 모임도 만들었다. 다시는 내 아이처럼 죽는 일 없게 하자고, 우리처럼 마음 아픈 부모들 없게 하자고, 모임 이름도 ‘다시는’이라고 지었다.

아쉬운 점이 많아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돼서 기뻤다. 이전의 법보다는 나아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부족한 부분은 하위법령으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는 소리에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하위법령을 보고 너무나 실망스러운 맘이 든다. 노동자가 계속 죽어 나가는 위험업무가 도급금지는커녕 도급승인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반복해서 노동자가 죽었던 용균이의 일터도, 서울지하철 구의역 김군의 일도 제외됐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독성 화학물질도 고작 4개만, 그것도 일상적인 유지·보수업무는 승인 대상에서도 제외했다니 너무나 실망스럽다. 반도체 전자산업에서도 위험한 일들이 가장 먼저 외주화되고 있는데, 그래서 하청노동자들이 점점 더 많이 죽어 가고 있는데, 이런 일들이 아예 도급승인 대상에도 거론되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정부 입법예고안을 보면 볼수록 화가 나고 답답해서 가만 있지 못하겠다. 이런 시행령·시행규칙으로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산재사망을 줄이는 목표를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국민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과 반올림의 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협약도 하며 힘을 실어 주셨다. 뿐만 아니라 대선후보 시절에 세월호 가족,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족, 삼성직업병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 오셔서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다. “저와 새 정부는 국민의 생명 보호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게 만들겠습니다”는 그 약속이 참 고마웠다. 대통령 취임 후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하신 말씀을 들었을 때는 참 든든한 맘이 들었다.

나는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대통령의 말씀을 믿고 싶다. 다른 중요한 일들 때문에 충분히 살펴보지 못하셨다면, 이제라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용노동부도 노동계 의견을 반영해서 입법예고안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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