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노조
드라마제작 스태프들이 밤샘촬영 같은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는 단초가 마련됐다. 얼마 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제작 과정에서 주 5회 근무·주 1회 유급휴가·4대 보험 같은 노동조건이 명시된 표준근로계약서를 스태프와 체결한 사실이 화제가 됐는데, 드라마제작 현장에서도 이를 도입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언론노조·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지상파 방송 3사·드라마제작사협회로 구성된 '지상파방송 드라마제작 환경 개선 공동협의체'가 지난 18일 드라마제작 스태프와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내용의 '지상파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가이드라인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고 20일 발표했다. 협의체를 운영한 지 6개월 만에 도출해 낸 결과다. 방송계·노동계는 이번 합의를 "이해관계자 대표들이 모여 만들어 낸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놓인 기술스태프 구제될 듯"

이번 합의에 따라 방송제작 과정에서 장시간 노동과 낮은 처우의 원인을 제공했던 턴키계약 관행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턴키계약은 방송사·제작사가 팀단위 스태프와 용역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팀장급 스태프가 일반 스태프와 다시 계약을 맺고 인건비 등을 지급한다. 다단계 하도급으로 방송사·제작사는 스태프 노동조건을 책임지지 않는다. 일부 팀장급 스태프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용자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였다.

노동계는 줄곧 제작사에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을 요구했다. 2017년 CJ ENM 이 제작한 드라마 <화유기> 스태프 추락사고부터 현재 방영 중인 CJ ENM 드라마 <아스달연대기> 장시간 촬영 논란까지 방송제작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고와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의 원인을 표준근로계약서 미체결로 봤기 때문이다.

진재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사무국장은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방송사가 아직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조명·기술 등) 감독급 스태프들을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용노동부는 2018년 3개 드라마제작 현장을 근로감독한 결과 "드라마제작은 연출감독(CP)에 의해 총괄지휘된다"며 다수 방송스태프 노동자성을 인정했지만 조명·장비·미술 등 기술 분야의 경우 방송사·제작사와 도급계약을 맺는 팀장급 스태프를 사용자로 판단했다.

"구체적 표준인건비기준·근로시간 내용이 문제"

공동협의체는 이번 합의를 바탕으로 '드라마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와 '드라마스태프 표준인건비기준'을 수립한다. 기본합의서에 일종의 선언이 들어갔다면 표준근로계약서에는 선언을 이행할 구체적인 노동조건이 담긴다. 논의가 치열할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을 두고 노사 이견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방송스태프들은 스태프 노동시간에 이동시간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드라마를 제작할 때 대부분 촬영지까지 장거리 이동을 하는데 이럴 경우 방송제작사는 스태프들을 한곳에 모이도록 해 함께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업무 시작시간을 집결시점으로 할지, 촬영지에 도착한 시점으로 볼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이동시간을 어떻게 볼 것인지 여러가지 논의를 하고 있다"며 "지혜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노동계 관계자는 "표준인건비기준을 수립하는 것이 가장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시장단가와 향후 단가를 어느 수준으로 협의·조정할지, 경력 산정은 어떻게 할지 등은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공동협의체는 표준근로계약서와 표준인건비기준 논의를 올해 9월30일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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