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을 포함한 양대 노총 관계자들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기간에 ILO 주요 관계자들을 잇따라 만났다. 지난 14일 ILO 본부에서 면담했다.

한국 노동계가 만난 이들은 마리아 헬레나 안드레 ILO 노동자활동지원국장, 코린 바르가 국제노동기준국장, 팀 드 메이어 선임자문관이다.

바르가 국장과 메이어 선임자문관은 국내에서도 익숙하다. 한국의 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해 여러 차례 “선 비준”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메이어 선임자문관은 지난해 11월 노사발전재단 주최 토론회에서 “기본협약 비준은 협약에 명시된 의무를 지키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협약을 준수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관련 법률이나 제도·관행을 가지고 오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바르가 국장은 올해 5월 국내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영상편지를 보내 “법제가 완벽해지고 모든 이해당사자가 만족할 때까지 비준을 미룬다면 노동권 보호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관행의 진전은 더욱 지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드레 국장 역시 한국 노동상황을 꿰뚫고 있다. ILO와 노사발전재단 공동워크숍 참여차 다음달 방한한다.

이들 3명은 양대 노총 간담회에서 한국 정부의 ILO 기본협약 비준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의 사회적 대화 발전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면담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기본협약과 무관한 법 개정? 비준 먼저 해야”

양대 노총 : 한국 정부가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국회 비준동의와 국내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진일보했지만 가야 할 길이 멀다. 한국 정부가 비준을 빙자해 노동법 개악을 밀어붙인다. 사용자단체에서 노동기본권과 무관한 내용을 주장한다.

마리아 헬레나 안드레 : 진전이 있어 보인다. 완성하는 게 중요하다. 지원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요청하라. 7월에 방한한다. 그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자. 노조에 우호적인 정부라 하더라도 노조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용자들이 협약비준을 악용해 (기본협약과) 연결되면 안 되는 이슈들을 제기하는 게 맞나. 폭넓은 법 개정은 비준을 먼저하고 해야 한다. 비준과 법 개정을 따로 떼어 내는 게 맞다고 설득해야 한다. 국내법을 개정하지 않았을 때 협약과 상충해 혼란을 일으킨다는 주장은 정치적인 주장이다. 법과 협약이 상충하면 어떤 게 일치하지 않는지 ILO가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코린 바르가 : 한국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 논의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국 상황을 긴밀히 추적하고 있다.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 달라. ILO는 기술지원을 할 준비가 돼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노사정이 함께 요청하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응할 준비가 돼 있다. 노조가 요청한다고 해서 지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요구하는지 혹은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지를 안다면 구체적인 기술지원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

팀 드 메이어 : 여러 기회를 통해 '법 개정을 먼저 해야 한다'는 한국 정부와 사용자 주장에 대해 말해 왔다. 기본협약을 비준한 뒤 (국내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1년이 될 때까지 개정하면 된다고 얘기해 왔다. 한국 상황을 영어뉴스로 보고 있다. 기본협약 비준 상황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노조만 관심을 가졌는데 그 폭이 넓어졌다. 한국 정부가 핵심 목표로 삼고 (노사정) 합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그런데 노사 간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오랫동안 굳어진 관행이라서 일순간 바꾸기 힘들 것이다. 정부가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대화 불참은 정부·사용자에 결정기회 주는 것”

김주영 위원장 : 한국의 사회적 대화가 어렵다. 조언해 달라.

안드레 : ILO 담당자로서 사회적 대화가 매우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사정 3자 목소리를 반영하는 수단이다. 문제는 파트너 간 신뢰다. 정부가 하는 것보다 노조가 어젠다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노조가 협상테이블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부와 사용자에게 결정기회를 제공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협상테이블에 나간다고 의제에 동의하고 합의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산업정책은 정부나 사용자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여러 나라 사회적 대화에서 NGO들이 노조가 했던 역할을 대체하려고 한다. ILO에서도 예전보다 노조 대표성이 떨어지고 있다. 그냥 둬서는 안 된다. 노조가 대표 역할을 해야 한다.

바르가 : 사회적 대화는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방법이 중요하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상대방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지금 말한 것은 보편적인 것인데, 한국만의 상황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대화는 제 기능을 할 것이다. 의지가 있다면 길은 열린다.

메이어 : 한국처럼 노사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면 사회적 대화는 실패한다. ILO 기본협약이나 최저임금·노동시간을 논의하면 당연히 실패한다. 실질적인 공감대가 있는 문제부터 대화하면서 신뢰를 쌓아야 한다. 공감할 수 있는 첫 번째 의제가 산업안전보건 문제다. 노동시장 다양성을 반영한 차별철폐도 중요하다. 이런 의제부터 시작해 사회적 대화의 불을 지핀 다음 극명하게 갈리는 이슈를 다룰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 상대방의 레드라인, 저들이 받을 수 없는 선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하고 파악해야 한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철회, 타협할 사안 아냐”

이주호 정책실장 :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려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철회와 특수고용직 노조할 권리 보장이 전제돼야 한다.

메이어 :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87호)과 관련해 핵심적인 사안이다. 타협할 사안이 아니다. 행정처분에 의해 노조설립신고서가 반려되면 안 된다. 노조가 순수하게 정치적인 활동만을 목적으로 조직할 때에만 노조설립신고서 취소를 고려할 수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지 따져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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