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트산업노조 주최로 2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마트노동자 근골격계질환 실태조사 발표 및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노조 관계자가 박스에 손잡이를 만들자는 캠페인 문구가 적힌 상자를 배치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물건이 담긴 박스에 중량물 표시가 안 돼 있거든요. 별생각 없이 하나를 들었는데 허리가 휘청하더라고요. 20킬로그램이나 되는 물티슈 박스였습니다. 하루에 수차례 박스를 옮기는데, 저녁이면 손이 저리고 다리가 아파요. 하지정맥류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2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마트산업노조가 주최한 마트노동자 근골격계질환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이마트 노동자 홍아무개(54)씨의 증언이다.

마트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감정노동만이 아니었다. 노조는 지난달 대형마트 노동자 5천1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근골격계질환 실태조사 결과를 이날 발표했다.

근골격계질환 증상으로 지난 1년간 병원 치료를 경험한 노동자가 3천586명(69.3%)이나 됐다. 1일 이상 회사에 출근하지 못한 사람은 1천203명(23.2%)으로 조사됐다. 오랜 시간 서서 일하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관절에 무리가 가는 동작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실제 마트노동자는 하루 평균 6.5시간을 서서 일했다. 쉬는 시간 없이 3시간 이상 연속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는 1명919명(59.7%)이다. 매장이나 계산대는 물론이고 매장에 진열할 상품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는 후방에서 어깨 들기·목 숙이기·허리 숙이기·쪼그리기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 후방 작업자는 주류·음료·세제 같은 무거운 상품이 담긴 박스를 하루 평균 345개 옮긴다. 박스당 평균 무게는 10킬로그램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박스에 제대로 된 손잡이만 설치돼 있어도 10~39.7%의 들기지수 경감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스 옮기는 작업이 그만큼 수월해진다는 뜻이다. 이 소장은 "구멍 뚫린 박스를 사용하도록 하면 박스 단가가 올라가겠지만 일하는 노동자 입장을 생각한다면 그리 크지 않은 비용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잡이 설치가 현행 제도에서 가능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조혜진 변호사(서비스연맹 법률원)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5킬로그램 이상 중량물에 물품 안내표시를 하고, 취급하기 곤란한 물품은 손잡이를 붙이는 조치를 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마트노동자들이 박스에 손잡이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하면 사업주들은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근골격계질환 집단 산업재해 신청과 박스 손잡이 설치요구 캠페인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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