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환성·김광일 독립PD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에요. EBS <다큐프라임-야수와 방주>를 제작하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간 두 PD가 그 늦은 밤에 일반 승용차를 빌려 왜 어두운 밤길을 운전해야 했는지, 채 먹지도 못한 햄버거와 콜라가 왜 차에 있었는지 우리 같은 독립PD는 너무 잘 알아요. 저작권법 개정은 이런 독립PD 상황에 크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봅니다."

최영기(57) 독립PD가 지난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저작권법 개정 관련 토론회에서 두 독립PD의 죽음을 떠올렸다. 당시 고 박환성 PD는 모든 저작재산권을 EBS가 갖는 사안을 두고 분쟁 중이었다. 분쟁이 일단락되기도 전 박 PD는 2017년 7월 촬영을 마치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향했다. 고 박환성·김광일 두 독립PD는 제작비를 최소화하려 SUV가 아닌 승용차를 빌리고 햄버거 따위로 간단히 끼니를 때웠지만 교통사고로 황망한 죽음을 맞았다.

"창작자가 모든 저작재산권 포기해야 계약 이뤄져"

최 PD는 "저작권법이 개정돼 2차 저작물을 창작자가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창작자가 추가 수익을 내는 것이 가능해져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가리키는 저작권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다. 창작자의 장래 창작물에 대한 포괄적 양도를 금지하고 저작물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에 대해 저작자가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시사교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독립PD는 방송사에 모든 저작재산권을 넘긴 채 계약한다. 독립PD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제작비는 방송사가 댄다. 독립PD가 적지 않은 제작비를 지급하는 방송사를 상대로 불공정한 계약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한경수 PD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동시에 모든 저작재산권을 방송사가 영구히 독점한다"며 "촬영 원본을 활용한 2차 저작물 작성·이용권도 방송사가 독점해 독립제작사는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해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독립PD는 새로운 작품을 찍을 때까지 곤궁한 생활을 또다시 이어 갈 수밖에 없다.

출판계 상황도 다르지 않다. 유영소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동화분과장은 "작가들은 계약조건이 부당해도 책을 내고 돈을 벌기 위해 저작권을 양도하는 계약을 한다"며 "공연권·전시권·공중송신권·2차 저작물 작성권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양도를 거부하면 계약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고 전했다.

"창작자에게 저작권 주면 방송사도 이득"

문화예술 노동자는 노웅래 의원이 발의한 저작권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창작자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노웅래 의원은 저작권법 개정안에서 "장래 창작물에 대한 저작재산권의 포괄적 양도 및 저작물의 포괄적 이용허락은 무효로 한다"고 규정했다. 창작자가 저작재산권 일체를 모두 양도하는 계약은 애초 성립할 수 없다. 창작자와 방송사·제작사·플랫폼사·출판사 간의 동등하지 않은 계약관계를 꿰뚫어 본 것이다.

최영기 PD는 "저작권을 쥔 영상을 창고에 쌓아 두는 방송사와 달리 독립PD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저작재산권을 통해 수익을 내려 노력한다"며 "이렇게 생긴 수익의 일부를 방송사도 가져가니 모두에게 윈-윈"이라고 주장했다. 한경수 PD는 "영국은 2003년 커뮤니케이션법을 제정하면서 방송사가 제도적으로 저작권을 독점할 수 없게 했다"며 "원래 제작사(창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영국의 방송산업은 크게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2004년 5억2천400만파운드였던 영국의 방송수출 규모는 2014년 13억파운드로 2.3배 증가했다.

하신아 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부지회장은 "단순한 당위성으로 창작자에게 저작권을 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며 "문화산업 육성 측면을 볼 때도 창작자가 저작권을 갖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최인이 충남대 교수(사회학)는 "법·제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조직화"라며 "조직화를 통해 저작권법과 계약에 관한 정보를 공유·교육하고 협상력을 높여 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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