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하루 종일 차로 붐비는 서울 강남역 사거리. 25미터 높이의 교통관제철탑 위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59)씨가 11일로 32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곡기를 끊은 지도 39일째다. 의료진은 “몸이 이미 많이 상한 상태니 하루라도 빨리 농성을 중단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무엇이 김씨를 철탑 위로 오르게 했을까.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오후 철탑 인근 서울 서초구 삼성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노동자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만큼 문제해결을 위한 긴급 교섭에 나서라”며 청와대와 삼성측에 요구했다. 이들은 “김씨는 헌법상 보장된 노조 만들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다 생활이 완전히 절단 났다”며 “1990년 노조설립 시도 과정에서 납치를 당하고 가족들은 괴롭힘을 받는 극한의 탄압을 받다가 해고됐다”고 설명했다.

“노조설립 막으려 폭행·감금·해고”

김용희씨는 1982년 삼성정밀주식회사 시계사업부에 입사했다가 1984년 삼성시계주식회사로 전보발령됐다. 1990년 삼성그룹 경남지역노조 설립 준비위원장으로 추대돼 활동하다가 1991년 해고됐다. 이종란 공인노무사(반올림 활동가)는 “김씨는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징계해고됐지만 해당 혐의는 조작된 것이었다”며 “여직원이 그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없다는 공증서를 써 줬음에도 삼성은 끝까지 복직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해고무효 소송을 했고 1993년 대법원 결심공판을 15일 앞두고 사측과 복직에 합의했다. 대법원에 상고 포기서를 제출했다. 당시 삼성측은 “소송 취하서를 작성해 주면 계열사에 1년만 근무한 뒤 원직에 복직시켜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김씨는 1994년 삼성건설 러시아 스몰렌스크지부로 발령받아 1년간 일하고 국내로 돌아왔지만 회사는 김씨를 원직에 복직시키지 않았다.

시민단체는 “러시아에서도 삼성은 그에게 노조 포기각서에 서명하라고 했지만 거절하자 감금해 손과 팔을 포승줄에 묶고 폭행하고 복직합의서류를 갈취해 갔다”며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김씨 본인은 물론 그의 가족들도 입에 차마 담기 힘든 탄압을 당했고 그로 인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영화 같은 비극, 세계에 알리겠다”

이날 시민단체들은 삼성에 사과와 복직을 요구했다. 이들은 지난 5일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 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시민단체는 “김씨는 삼성정밀·삼성시계·삼성건설 러시아 지부로 회사와 근무처가 바뀌어 왔기 때문에, 마지막 회사였던 삼성물산에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 요청을 한 것”이라며 “김씨가 처음 입사한 삼성정밀주식회사(삼성테크윈)는 한화에 매각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종란 노무사는 “김씨가 이처럼 끔찍한 일들을 겪었는데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느냐”며 “누가 철탑 위로 올라간 김씨를 무리하다 비판하고 삼성의 만행이 법적 소멸시효가 다 됐다고 외칠 수 있단 말이냐”고 일갈했다. 조현철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이사장도 “삼성은 이미 다 끝난 일인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왜 이러냐고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은 몇 십년 전 겪은 일로 고통받는다”며 “법을 떠나서 먼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진솔하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기업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활동가는 “전 세계적 브랜드인 삼성에서 한 노동자가 겪어야 했던 수많은 비극을 영어로 번역해서 SNS에 올릴 수도 있다”며 “삼성은 김씨가 주장하는 일이 사실이 아니라면 증거를 내고, 증거를 내지 못하겠다면 외침에 응답하라”고 했다.

한편 지난 10일 소방사다리차가 철탑에 배치돼 시민단체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시민단체측은 “10일 오전과 저녁 소방사다리차가 기습적으로 배치됐다”며 “연대하러 온 시민들의 만류로 다음날 새벽 1시께 경찰과 소방관들이 철수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긴장 상태”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난 10일 60세 생일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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