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들이 지난 10일 오후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을 방문해 ‘사용자위원 삭감안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용지를 전달하고 있다. <김학태 기자>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수준(2.87%)으로 결정하면서 공익위원 역할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결과적으로 최저임금위 공익위원들은 노사 양측 입장차를 조율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공익위원들이 애초부터 3% 전후 인상률을 작정하고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기울어진 최저임금위 논의 지형이 인상률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비판이다.

사용자위원 삭감안 고수하는데 노동계에 최종안 내라?

14일 노동계에 따르면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2.87%(240원) 인상에 그친 8천590원으로 결정되는 과정에서 노사의 현격한 입장차를 좁히려는 공익위원들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2일 새벽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의결할 때 노사가 제출한 최종안은 각각 6.3%(8천880원)와 2.87%(8천590원)였다. 양측 차이는 3.43%포인트 그리 크지 않다. 굳이 공익안이나 심의촉진 구간을 내야 할 상황이 아니다.

한데 직전 상황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10일 제시된 노사 1차 수정안은 14.6%와 마이너스 2.0%였다. 16.6%포인트라는 차이도 적지 않지만 사용자위원들이 1차 수정안에서 삭감안을 유지했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였다.

노동자위원들은 11일 밤 공익위원들에게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최소한 삭감안을 철회하겠다는 사용자위원들의 의지를 확인해야 수정안을 제출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공익위원들은 “노사 모두 표결 가능한 최종안을 내어 달라”고 통보했고, 이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노동계는 과감한 수정안을 내지 않으면 표결에서 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1차 수정안에서 절반 이상 줄인 최종안을 낸 이유다. 반면 사용자위원은 4.87%포인트밖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익위원 9명 중 6명은 사용자위원 최종안을 선택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공익위원들이 말한 표결 가능한 구간이 어떤 수준인지에 대한 논의도 없었는데 곧바로 최종안을 내라고 해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공익위원 정부 거수기 우려 현실화”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은 공익위원들의 조정·중재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협의 과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비공식 협의만 13~14차례 했다”고 항변했다.

공익위원들이 공익안을 내놓거나 심의촉진 구간을 제시했더라도 결과가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올해 5월 교체된 지금의 공익위원들이 처음부터 상당히 낮은 인상률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일부 공익위원들을 취재한 결과 공익위원 내부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인상률은 3%±α였다. 사용자위원들이 최종안으로 제시한 2.87%와 큰 차이가 없다.

이런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류장수 전 최저임금위원장은 최저임금 심사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7월13일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위가 독립성과 자율성을 잃으면 남는 게 없다”며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발언에 대해 감정적 대응은 하지 않겠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전날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0년까지 1만원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최근 경제상황과 고용여건, 취약계층에 미치는 영향, 시장 수용능력을 감안해야 한다. 최저임금위의 합리적 결정을 기대한다”며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설정한 것에 대한 반발로 해석됐다.

올해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2일 방송사 인터뷰에서 “내년 최저임금 인상 수준은 최소화돼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러자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은 “우리 사회 다양한 목소리 중 하나로 이해하고 싶다”고 평가했다.

전현직 최저임금위원장들이 '최저임금위 독립성·자율성' 측면에서 인식 차이를 보인 셈이다.

박준식 위원장은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면서 정부 압박을 받은 적이 없고, 압박을 받고 결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노동계 일각에서는 “지금 공익위원들이 새로 임명될 때부터 정부 거수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그게 현실이 됐다”고 안타까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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