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환춘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요양신청을 하는 경우 공단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업무상재해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의사 등 전문가로 구성된 업무상질병판정위 심의에서 사고로 인한 부상 혹은 질병이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지 여부, 즉 ‘업무관련성’ 판단을 하는 데 있어 해당 분야 전문가인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업무상 부상 혹은 질병이 존재하는지 여부와 업무관련성 문제를 분리해 후자는 전문가인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판단에 귀를 기울여야 함에도, 예를 들어 근골격계질환의 경우 정형외과 전문의 판단에 의지해 요양불승인 처분을 하고 있다. 노동자는 요양신청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개인 부담으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로부터 업무관련성 평가서를 받아 요양신청서와 함께 공단에 제출하는 관행까지 생겼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요양불승인 처분을 받게 되면 산재 노동자는 법원에 행정소송을 낼 수밖에 없다. 법원에서는 원고(노동자)와 피고(공단)가 각각 진료기록 감정신청을 하게 되는데, 근골격계질환의 경우 노동자는 직업환경의학과에, 근로복지공단은 정형외과(혹은 신경외과)에 진료기록 감정신청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직업환경의학과 감정의가 업무관련성을 인정하고, 정형외과 감정의가 업무관련성을 부인(혹은 상병 존재를 부인)하는 소견을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가 문제가 된다. 업무상 부상 혹은 질병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정형외과 판단에, 업무관련성은 직업환경의학과의 판단에 더 가치를 둬야 함에도 그동안 법원은 마치 업무관련성에 대해 두 개의 상이한 판단이 존재하는 것으로 취급해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입증을 요구하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금속노조 법률원이 요양불승인취소 행정소송을 대리했던 A씨 사례는 법원이 편향적으로 정형외과 감정의 판단에 더 큰 가치를 둬서 1심에서 패소했던 사례다. A씨의 어깨 근막통증증후군이 업무상질병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는데 총 7명의 의사 소견이 법원에 제출됐다. 주치의와 근로복지공단 자문의 2명, A씨가 개인적으로 의뢰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2명(1명은 대학병원 교수), 법원 감정의(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정형외과 전문의) 2명 등 7명 중 업무관련성을 부인한 것은 법원 정형외과 감정의 단 1명이었다. 그럼에도 1심 재판부는 업무관련성을 부인하고 2018년 11월14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업무관련성에 대한 법원 감정의 2명의 판단이 배치되는 상황에서 업무관련성 판단 전문가인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가 아니라 정형외과 전문의의 판단을 우선시한 것이다.

금속노조 법률원은 항소심에서 ‘업무관련성 판단은 직업환경의학과 감정의 소견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2019년 5월15일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부산고등법원(창원 원외재판부) 2019. 5. 15. 선고 2018누11916 판결]. 재판부는 고용노동부 고시인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 2항라. 2)에서 업무관련성을 판단할 때 신체부담 정도는 ‘인간공학전문가·산업위생전문가·산업의학 전문의 등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평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법원 정형외과 감정의 소견과 나머지 6명의 의사들의 소견이 모순된다면 법원 정형외과 전문의보다는 위 조항에서 말하는 ‘관련 전문가’에 더 가까운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가 포함된 나머지 6명의 의사들의 소견을 취신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위 판결은 근로복지공단이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대법원은 산재 사건에 있어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증명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 판례 취지에 따라 업무관련성 판단 과정에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를 전문가로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에 의미가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업무관련성 평가를 할 때 전문가인 직업환경의학과 소견 외에 산재 노동자에게 추가적인 입증부담을 요구해 왔던 법원 관행에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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