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호현 변호사(법무법인 원)

직장내 괴롭힘을 금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이 법이 이리 빨리 통과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이는 양진호·조현아씨 등 기업인 갑질이 국민적 공분을 산 덕(?)이다. 이른 개정이었기에 허점이 많다.

가장 중요한 건 사용자가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일 때 피해자 구제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근기법 76조의2는 사용자에게 괴롭힘 금지의무를 부과하기는 했으나, 위반시 제재규정이 없다. “사업주가 직장내 성희롱을 한 경우 1천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한다”(39조1항)고 규정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과 대비된다. 노조가 없거나 작은 사업장일 경우 사장 등이 주요 가해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더욱 문제다. 고용노동부는 17일 직장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해당 사업장 괴롭힘 실태 진단, 사내 예방·대응 시스템 점검,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 특별근로감독 실시 방침을 밝혔으나, 징계권자이자 조사 주체인 사용자가 가해자일 경우 행위에 상응하는 제재를 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두 번째는 근기법 76조의3이 사용자에게 각 ‘괴롭힘 조사(2항)’ ‘조사 기간 및 피해 사실 확인시 피해자 보호조치(3항·4항)’ ‘가해자에 대한 징계 등 조치(5항)’ 의무를 부과함에도 그 위반시 제재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남녀고용평등법 39조2항이 사업주가 성희롱 사실 조사(1의4호), 성희롱 사실이 확인됐을 때 피해자 보호조치(1의5호), 가해자에 징계 등 조치(1의6호)를 하지 않은 경우 각 500만원 이하 과태료로 규율하는 것과 대비된다. 특히 프랑스·호주 등과 달리 가해자 직접 처벌규정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용자가 가해자에게 징계 등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사용자를 제재할 규정이 없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세 번째는 이 법이 사용자에게 괴롭힘 예방 교육실시 및 내용 게시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사용자·근로자에게 교육받을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무가 없으니 의무 위반 제재규정도 없다. 이 역시 남녀고용평등법 39조2항이 사업주가 예방교육(1의2호) 및 내용 게시 등(1의3호) 의무 위반시 각 500만원 이하 과태료로 규율하는 점과 비교된다.

마지막으로 4인 이하 사업장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근기법 11조2항, 근기법 시행령 7조). 괴롭힘은 노조가 없거나 규모가 작은 곳에서 빈번하고, 해고가 자유로운 4인 이하 사업장(근기법 23조1항 부적용) 노동자는 괴롭힘에 더욱 취약한 점을 감안하면 이 또한 중대한 결함이다.

우리 사회의 직장내 괴롭힘 문제는 심각하다. 국무총리실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 국민의 90%가 “직장내 괴롭힘을 포함한 갑질 문제가 심각하다”(매우 심각 49.8%)고 봤다. 66.1%는 정부의 적극 개입을 요구했다(소극 개입 10.2%, 자율 17.6%). 국민 10명 중 예닐곱 명은 직장내 괴롭힘에 대해 회사의 자율적 처리보다 형사처벌 등 국가의 적극개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직장갑질119가 지난 8일 발표한 ‘직장갑질 실태 및 감수성 조사 결과’를 보면 분명해진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봤을 때 ‘참거나 모른 척했다’가 65%(신고한다는 16.6%에 불과)였고, 그 이유의 66.4%는 ‘대응을 해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 29%는 ‘향후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 임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국민은 이 법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다. 법 시행 이후 괴롭힘이 줄어들 것이라는 응답이 58.1%나 된다. 또 자신의 행위가 처벌 대상인지 우려하는 직장인들도 많다. 위 조사에서는 이 법이 개정됐을 뿐 시행되기 전에 이뤄졌음에도 괴롭힘이 줄었다는 응답이 31.9%였다(변화 없다 68.1%).

노동부가 발 빠르게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안내서 배포, 괴롭힘 전담 근로감독관 167명 배치, 적극적 신고 접수(법상 괴롭힘 신고 접수 주체는 사용자)를 하는 등 적극행정을 하는 것은 지난해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당시와 비교할 때 매우 고무적이다. 파견노동자에 대해 괴롭힘이 인정될 수 있고, 원·하청 노동자 간에도 괴롭힘 관련 취업규칙이 적용되도록 규정함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한 점도 그러하다.

그러나 아직 미흡하다. 직장인들의 기대가 지대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 법이, 또 정부가 자신의 삶을 바꿔 줄 것이라 기대하나 앞서 본 것처럼 이 법은 부족하다. 정부를 믿고 용기 내 신고했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가해자를 적절하게 제재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누구도 나서지 않을 것이다. 정부를 믿지 않을 것이다.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갑질문제는 계약관계인 갑을관계가 유사신분관계로 변질되는 현상의 한 단면이며, 이는 계약의 이행을 보증할 국가 등(제3자 보증인)의 힘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고 본다. 사용자와 노동자는 근로계약관계에 있을 뿐이다. 노동자는 정해진 시간 동안 약정한 노무를 제공할 의무, 사용자는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할 의무와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할 뿐이다. 누구도 계약을 넘어 의무 없는 행위를 강요할 수 없게 제3자 보증인이 힘을 보여 줘야 한다. 노동부가 나설 차례다. 지난 4일간 접수된 43건의 진정에 적극 대처해야 하고, 취업규칙 변경 여부를 철저히 확인해야 하며, 법 실효성 확보를 위해 법령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제 막 닻을 올렸다. 돛을 올리고 노를 저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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