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 관련 기업에 인가연장근로를 허용한다. 반도체 핵심소재 국산화·대체 효과는 보지 못하고 노동자만 무제한 연장근로에 내몰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무제한 연장근로 허용, 노동자 건강대책 미흡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2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일본 수출규제 사태를 사회적 재난에 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수출규제 품목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R&D), 제3국 대체조달 테스트 관련 연구·연구지원 등 필수인력에 대해 근로기준법에 따른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근로기준법 53조4항(일명 인가연장근로)에 따르면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와 노동자 동의를 받아 주 12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현행 법령상 인가연장근로는 무제한 가능하다. 근기법 시행규칙(9조2항)은 이와 관련해 특별한 사정을 “자연재해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른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해 이를 수습하기 위한 연장근로를 피할 수 없는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피해가 직접적인 재해·재난은 아니지만 ‘사회재난에 준하는 사고’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노동부 해석이다. 2015년 개성공단 폐쇄조치로 국내 증산이 불가피한 업체들에게 인가연장근로를 허용한 사례를 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일본 수출규제 품목 관련 업체로 확인한 경우 인가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일본이 수출을 규제하는 품목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리지스트·에칭가스(불화수소)다. 연장근로 인가신청이 들어오면 지방노동관서에서 필요성 등을 확인한 뒤 최장 3개월 범위에서 허용한다. 3개월 단위로 다시 신청할 수 있다. 재신청을 몇 번까지 허용할지는 정하지 않았다. 과거 사례에서 4개월 이상 인가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갑 장관은 무한정 연장근로가 가능하다는 우려에 대해 “인가할 때 노동자 보호를 위한 여러 조건을 기업에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인가를 내줄 때 연장근로 한도와 노동자 휴가 관련 대책을 권고할 방침이다. 물론 법적 강제성이 없어 효과는 미지수다.

“다른 방법 있을 텐데 … 노동자만 희생양”

일본이 전략물자 수출시 통관절차를 간소화하는 우호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등 수출규제를 확대하면 인가연장근로 대상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장관은 “지금 확정된 것은 3개 물질”이라며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된다면 제외된 물질 중에서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지 봐야 하고 우리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신상품·신기술 연구개발이 근기법상 재량근로 대상업무(시행령 31조)에 해당한다는 점을 감안해 이달 말까지 재량근로제 활용가이드를 발표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인가연장근로로 신소재 국산화 효과는 보지 못한 채 노동자만 희생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노총은 논평에서 “지금이 노동자를 희생 삼아 임시방편책을 내놓을 때냐”고 반문한 뒤 “소재기술은 하루아침에 끌어올릴 수 있는 게 아닌데 재난 상황에서나 적용하는 특별연장근로 허용과 연구개발 인력의 재량근로 활용을 대책으로 발표했다”고 꼬집었다.

현행법이 보장하는 다른 유연근로제를 활용하지 않고 곧바로 무제한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은 “관련 회사들이 주로 대기업인 만큼 노동자를 추가로 고용하거나 현행법에서 가능한 탄력근로제나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해도 된다”며 “일본 수출규제 충격이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야 할 정도의 국가 재난인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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