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시텔에서 전기·엘리베이터·수도·보일러 관리뿐 아니라 청소·민원업무까지 했다는 노동자 ㄱ씨. ㄱ씨는 이곳에서 숙식을 하면서 오전 7시에 일어나 다음날 새벽까지 하루 20시간 가까이 일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돈은 월 200만원뿐이었다.

“새벽에도 ‘TV가 안 나온다’거나 ‘옆방이 시끄럽다’는 등 민원 전화로 마음 편히 잠을 못 자고 화재 취약지도 수시로 점검해야 했어요. 새벽이든 저녁이든 (빈방이 있는지) 전화도 하지 않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서 무조건 사무실에서 자야 했고요.”

9개월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는 ㄱ씨. 사업주에게 최저임금 미달분 지급을 요구했다가 되레 해고를 당했다. 그는 고용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넣었다.

22일 직장갑질119는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시설관리 노동자에게서 받은 이메일 제보 중 10건을 공개했다. ㄱ씨처럼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한 사례뿐 아니라 “관리소장이 여자 화장실 문을 허락 없이 열어 수치심을 느꼈다”거나 “정해진 시간보다 5분 일찍 샤워했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썼다”는 등 회사 관리자의 성희롱·갑질 사례가 이어졌다.

“관리자 잘못 지적하니 업무대기 … 억울해 잠도 못 자”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회사 관리자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용역업체 소장에게 구박을 당했다”는 ㄴ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소장은 나이 든 사람의 인사는 거의 받지도 않고 트집 잡는 일이 많아 상처를 받은 고령자들이 하나둘씩 일을 그만뒀다”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억울해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회사 관리자의 잘못을 지적했다가 괴롭힘을 당한 사례도 있었다. 회사 팀장의 업무태만 문제를 제기했다가 권고사직을 권유받은 ㄷ씨가 그렇다. ㄷ씨는 “계속 회사를 다니겠다고 했지만 그 이후로 괴롭힘이 시작됐다”며 “제대로 된 업무는 주지 않고 업무대기만 시키면서, 회의 때는 저를 일 안하는 게으른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잠도 못 잘 정도로 제대로 된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용역업체 청소노동자인 ㄹ씨도 마찬가지다. ㄹ씨는 아침 근무 중 업체 관리자에게 성추행을 당해 업체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업체는 오히려 사직을 종용했다. ㄹ씨는 “사직을 거절했더니 회사 주도로 직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며 “청소를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했더니 먼지가 많다며 닦으라고 하고, 로비 바닥을 깨끗하게 하라고 해서 수시로 닦았더니 이번엔 자주 왔다 갔다 해서 거슬린다고 하더라”고 하소연했다.

시설관리119 출범 … “갑질·비리 제보받겠다”

이 같은 부당한 일을 당해도 시설관리 노동자들이 대처하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직장갑질119는 “시설관리 노동자는 평균 연령이 높아 폭언·불법지시·성희롱을 당해도 녹음을 하는 등 증거를 남기기 어렵고, 원청 사용자라 할 수 있는 기관(건물주)은 용역업체에 책임을 떠넘기기 십상”이라고 전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시설관리 노동자는 업체 관리자 갑질뿐 아니라 아파트 주민, 건물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갑질에 시달리는 을 중의 을”이라며 “시설관리 노동자들 노동은 정당한 대우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직장갑질119는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갑질과 비리를 제보받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공인노무사·변호사를 비롯한 노동단체·전문가들과 함께 시설관리119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모임을 만들었다. 직장갑질119가 만든 직종별 모임은 아홉 개가 됐다.

시설갑질119에 참여하려면 네이버밴드(band.us/@siseol119)에 가입해 이름·연락처·직책·직종·사업장 인원수·지역을 남기면 된다. 시설갑질119는 제보자 보호를 위해 관리자인지 여부를 확인한 뒤 가입을 승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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