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법인분할 주주총회를 막기 위해 파업과 농성을 했던 노조에 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추후 손해액이 입증되는 대로 청구액을 92억원까지 늘린다고 한다. 법원은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와 간부들의 예금과 부동산 같은 재산에 30억원을 가압류하라는 결정을 내줬다. 한국에서 파업은 패가망신을 무릅쓰고 하는 일이다. 합법파업을 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엄격한 쟁의행위 목적과 절차를 지켜야 합법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다. 삐끗하면 업무방해죄로 처벌받고, 여기에 더해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 노조뿐만 아니라 개인도 그물망을 벗어날 수 없다. 가압류로 경제활동까지 막는다. 압박감에 목숨을 끊는 이도 있었다. 2015년 “손해배상과 가압류 남용은 노동 3권을 무력화시키는 부당한 처사”라고 했던 문재인 의원은 2017년 대통령이 됐지만 노동자들의 눈물은 그치지 않는다.

정당한 노조 투쟁에 적반하장격 보복
김형균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

김형균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

현대중공업 법인분할과 본사 이전 문제로 불거진 불법 날치기 주주총회를 막기 위한 노조의 정당한 투쟁에 대해 회사는 법과 원칙을 들이대며 보복조치에 나섰다. 적반하장이다.

현재 불법 날치기 주주총회에 대한 가처분 소송과 주주총회 무효를 구하는 본안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측이 위법 여부와 피해가 확실하지도 않은 주주총회장 점거·생산방해 등을 내세우면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은 노조와 조합원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불법 하자투성이 날치기 법인분할로 노동자들이 피땀으로 일군 자산 12조원을 빼돌리고, 지난 4년간 구조조정으로 지역경제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본사 이전 강행에 따른 지역사회 분노가 아직 채 식지도 않았다. 회사가 92억원 손배·가압류, 고소·고발, 대량징계에 몰두하는 사이 지역사회의 ‘반현대중공업’ 정서는 더 악화되고 울산시민들의 분노 또한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은 법전에만 있다. 이 기본권은 업무방해죄와 손해배상 청구소송 같은 하위법에 속수무책이다.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신청으로 노조와 조합원에게 보장된 노동기본권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정부는 사용자들의 무차별적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청구가 남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노동자 스스로 목숨 끊게 만드는 행위 중단시켜야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손배소송·가압류는 노동자들에게 큰 압박이 된다. 실제 집행 전 위협만으로도 정신적 압박이 시작된다. 회사의 소송이나 사법부 판단에 대한 분노, 경제적 부담이나 형사상 책임에 대한 불안이 모두 정신적 위협이 된다. 유성기업이나 쌍용자동차 등 실제 손배·가압류를 당했던 노동자들의 증언이나, 대상 연구 등 노동자에게 미치는 파괴적 영향에 대한 증거는 충분하다.

이전 연구들에 따르면 손배·가압류 대상이 된 노동자들은 우울·불안증상 유병률이 훨씬 높고, 알코올중독 등 물질 관련 문제를 일으킬 위험도 높아진다.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도 한다. 손배·가압류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는 정신적 문제뿐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큰 위협이 된다. 수면장애나 소화장애 등이 발생하고, 심근경색·뇌졸중 등 뇌심혈관계질환 위험을 높인다.

애초 회사나 기업이 노동자의 건강과 안위를 염려했다면 손배 소송을 걸고 가압류를 진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압력으로 중단시켜야 하는 이유다.

노조파괴로 활용되는 부당노동행위
도성대 금속노조 유성기업아산지회장

도성대 금속노조 유성기업아산지회장

노조파괴에는 정석이 있다. 직장폐쇄를 하고 노조 항의집회에 용역을 투입하고, 창조컨설팅 같은 전문 컨설팅업체는 노조와 조합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가압류를 걸었다. 이런 노조파괴 방식이 유행처럼, 열병처럼 번졌다. 유성기업은 창조컨설팅에서 직접 노조파괴 컨설팅을 받았다. 창조컨설팅은 법률자문을 하면서 어용노조를 만들고 손해배상으로 노조를 위축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어용노조는 사업장단위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 지 13일 만에 출범했다. 그러면서 손배 소송을 했다. 유성기업은 1심에서 100억원, 2심에서 40억원을 청구했다. 2심 재판부는 10억1천150만원을 선고했다.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자까지 합쳐 손해배상액이 20억원에 육박한다. 손해배상액 산출근거는 현대·기아자동차가 납품을 받지 못해 생긴 생산차질 비용이라는데 확인할 수 없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얘기로는 유성기업 때문에 생산 차질을 빚은 적이 없다고 한다.

손배는 금액도 그렇지만 대상자 선정이 문제다. 간부와 핵심조합원 중심으로 손배 대상자를 선정한다. 어용노조로 넘어오면 손배 대상자에서 빼 준다고 유혹한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노조를 탈퇴했다. 손해배상 소송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노조가 현장순회를 할 때 ‘몸빵조’가 막고 ‘시비조’가 시비를 걸어 폭력행위를 유발한다. 그걸 채증조가 채증해 고소·고발을 한다.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그것을 근거로 손배를 청구한다. 2017년 말부터 2018년까지 그렇게 제기된 손배 소송액이 1억원을 넘는다. 회사가 손해를 봤다며 회사가 걸고, 개인 대 개인의 싸움이 되면 관리자들이 원고가 된다. 손배 소송을 낸 당사자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손해배상은 조합원들을 위축시킨다. 자주 피소되니까 법정에 많이 서는데, 출석하려면 조퇴를 해야 한다. 회사는 조퇴를 허가해 주지 않는다. 자체 파업을 하고 법정에 간다. 그러면 월차가 다 삭감된다. 3중으로 임금 손실을 본다. 누가 앞에 나서려 하겠는가. 노조탄압 목적으로 손배가압류가 쓰여서는 안 된다. 명백하게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해야 한다.

회사 주장만으로도 받아들여지는 노동자 탄압 도구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현대중공업 파업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한진중공업·쌍용자동차를 떠올렸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노조무력화 시도를 본격적으로 진행했고 이에 따라 사실상 대공장 파업도 주춤했다. 수십·수백 억원대 손해배상 청구도 2016년 철도노조 파업이 거의 마지막이었다. 그러다 올해 대공장 노조를 상대로 두 번의 손해배상 청구가 발생했는데, 주인공은 현대중공업과 한국지엠이다. 모두 법인분할 문제로 노사갈등이 있는 사업장이다.

현대중공업은 노조가 점거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말한다. 아직 위법·불법 여부는 가려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바로 이점에서 손배 청구가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위험성이 크다. ‘억’소리 나는 금액을 단지 회사의 주장만으로 청구하고, 공탁금만 있으면 가압류 신청도 쉽게 받아들이는 게 한국 사법부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92억원 손배 청구와 30억원 가압류를 받는 노동자는 심리적·물리적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점거나 생산방해는 파업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쟁의행위 중 하나다. 문제는 이 같은 쟁의행위가 벌어지기 전까지 충분히 교섭으로 풀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다. 법인분할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렵다 보니 어떤 문제일지 단번에 파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경영상 요건’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상 노동자의 일자리 안정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사측은 노동자의 불안을 해소시키는 것을 무시하고 경영권을 내세우며 내용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처리도 날치기로 밀어붙였다. 노사관계의 책임은 노사 양쪽에 있다고 하면서도, 손배 청구는 그 책임을 노조에만 묻는 대표적인 수단이라는 점이 현대중공업 사건으로 다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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