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가 이달 7일 조합원들의 시간외근로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불시에 여의도본점 별관 전산센터를 찾았다.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주요 시중은행들이 영업개시 전 출근을 강제하는 인사규정을 운영하고도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원들의 만성적인 장시간 노동·공짜노동의 실체가 엿보인다.

◇평균 출근시간 오전 8시18분, 시간외근로수당 없어=<매일노동뉴스>가 28일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를 비롯한 4대 시중은행지부를 통해 각 은행 출근시간에 관한 인사규정을 들여다봤다.

KB국민은행의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직원 근무시간은 휴게시간 1시간을 포함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로 돼 있다.

출근 규정을 보면 의아한 대목이 눈에 띈다. “직원은 영업개시 15분 전까지 출근해야 한다.” 문제는 숨은 노동의 대가를 은행들이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KB국민은행지부는 최근 A부서의 이달 1일부터 5일까지 발생한 오전 시간외근무 현황을 조사했다. A부서 노동자 9명의 평균 피시온(PC-ON) 시간(출근시간)은 오전 8시18분이었다. 오전 8시45분 이후 출근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시간외근로수당을 받지 못했다. 근로기준법(50조3항)은 "작업을 위해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A부서 노동자들이 하루에 평균 40분 이상의 공짜노동을 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심희천 KB국민은행지부 홍보실장은 “여러 부점장들이 오전 8시45분 이전에 출근한 직원들에게 9시에 맞춰 피시를 켜라거나, 조기출근 시간외근로를 신청해도 승인을 안 하고, 아예 신청을 못하게 막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조기출근 시간외근로 신청 승인율이 이달 13일 무렵부터 크게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고객을 상대로 일을 하는 만큼 영업시작 전 준비과정은 필수적"이라며 "이에 맞춰 인사규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대다수 부점에서 조기출근에 따른 시간외근로 신청과 승인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상 어려우면, 퇴근시간 앞당기자"=다른 은행 상황도 다르지 않다. KEB하나은행의 영업시간과 직원 근무시간은 KB국민은행과 같다. 영업개시 10분 전까지 출근하게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KEB하나은행 노동자들은 오전 8시30분부터 자유롭게 피시를 켤 수 있다. 그전에 피시를 켜려면 관리자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을 받으면 시간외근무수당이 주어진다. 하루 10분 공짜노동에 대한 보상을 신청하는 것 자체가 전산상으로 막혀 있다는 뜻이다. 최영애 KEB하나은행지부 부위원장은 “은행이 인사규정에 따라 직원들을 영업시간 전에 조기출근을 시키고도 제대로 보상하지 않고 있다”며 “출퇴근 기록시스템을 도입해 조기출근을 한 만큼 퇴근시간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조기출근을 강제하는 별도 인사규정이 없다. 다만 오전 8시30분부터 9시까지를 업무사전준비시간으로 설정해 놓았다. 빨리 출근해도 별도 보상은 없다. 보완책으로 ‘스마트 근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회의 등 업무를 보기 위해 오전 8시30분에 출근한 직원의 퇴근시간을 30분 앞당겨 주는 제도다. 최용철 신한은행지부 수석부위원장은 “직원들이 통상 30분 전쯤 출근해 업무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별도 시간외근로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며 “업무사전준비시간 내에 회의 같은 업무가 있다면 이를 시간외근로로 적용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얼마 전까지 “직원은 영업시작 10분 전까지 모든 업무를 준비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출근해야 한다”는 인사규정을 운영했다. 이달 5일 해당 규정을 “영업시작시까지”로 변경했다. 이를 전후해 영업개시 전 관리자 승인 없이 피시를 켤 수 있는 시각은 오전 8시30분에서 45분으로 늦춰졌다. 정연실 우리은행지부 부위원장은 “주 52시간제를 6개월 전부터 시범운영하며 여러 보완책을 찾았다”며 “출근시간을 영업시작 시간으로 조정하고 10분 단위로 시간외근로를 신청할 수 있게 하면서 조기출근에 따른 보상이 제대로 주어지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덕봉 노조 노동조건감찰단 총괄팀장은 "업무준비나 대기시간도 노동시간이라는 것이 법의 취지인데도 대다수 은행들이 인사규정을 앞세워 은행원들을 조기에 출근시키고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고용노동부의 실태점검과 시정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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