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화진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이 30일 오전 노동부 브리핑실에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관련 입법예고안을 설명하고 있다. <노동부>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31일 입법예고한다. 정기국회에서 법 개정과 국회 비준동의를 병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정부 입법예고안에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과 쟁의행위시 사업장 점거 금지 같은 ILO 기본협약과 무관한 내용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는 아직도 "법 개정 없는 국회 비준동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여당 의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업자 노조가입 허용하되 기업별노조 임원출마 금지

3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외교부에 ILO 3개 기본협약 비준을 의뢰했다. 비준대상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98호) △강제노동 협약(29호)이다.

31일에는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이 있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 노동부는 "ILO 기본협약 비준 관련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했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들이 올해 4월15일 권고한 내용을 개정안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실업자와 해고자 노조가입은 허용된다. 다만 실업자·해고자 조합원이 노조활동을 할 때에는 사업장 출입·시설 사용에 대해 노사가 합의한 절차 또는 사업장 규칙을 지키도록 했다. 해고자나 실업자는 기업별노조 임원이 될 수 없다.

노조법상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조항은 삭제된다. 노동부가 운영 중인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를 경사노위로 이관해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결정할 방침이다.

퇴직하거나 해고된 공무원·교원과 소방공무원·대학교원의 노조가입도 허용된다. 현재 6급까지로 제한한 공무원노조 가입대상을 5급 이상으로 확대하되, 지휘·감독자나 총괄업무 종사자는 제외한다. 노동부는 복수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의 경우 사용자가 동의해 개별교섭을 할 때 모든 노조에 대한 성실교섭·차별금지 의무를 부여했다.

“법 개정 없는 국회 비준? 현실적으로 불가능”

정부 입법예고안에 대해 ILO 기본협약을 충족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실업자·해고자의 임원출마를 제한한 조항이다. 권고안을 낸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 공익위원들도 “ILO 87호 협약에 위배된다”고 인정한 내용이다.

노동부는 이와 관련해 “경사노위 공익위원안은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면서도 (기업별 노사관계 중심인) 우리나라 노사관계 현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균형 잡힌 대안”이라고 밝혔다.

ILO 기본협약과 무관한 내용도 입법예고안에 포함됐다. 노조법 개정안에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쟁의행위시 사업장 생산·주요 업무 시설을 전부 또는 일부 점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노동계가 정부 입법예고안에 반발하는 이유다.

국제사회는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은 지난달 ILO 100주년 총회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나 “핵심협약(기본협약)은 모든 노동자가 누려야 할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조건을 달 문제가 아니다”며 “저희(ILO)는 약간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국회에서 합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노동계는 “조건 없는 국회 비준”을 요구하고 있다. 여야가 주고받기를 하지 말고 비준동의안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박화진 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 기자브리핑에서 “정치권이 법률 개정에 대한 공감 없이 먼저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켜 줄 가능성은 적다”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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