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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규제완화, 주 52시간 상한제 흔들기 논란

기사승인 2019.08.02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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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이 엉뚱하게 일본 수출규제 혜택을 누리게 됐다. 정부는 일본발 위기를 기업 규제완화 모멘텀으로 삼았다. 무제한 노동을 허용하는 인가연장근로가 그렇다. 고용노동부는 수출규제를 “자연재해와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해 이를 수습하기 위한 연장근로를 피할 수 없는 경우”로 본다고 한다. 경제부총리는 국회에서 “반도체 R&D는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적용제외를 검토하고 있다”고 무모한 답변을 했다. 노동부는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를 재량근로 대상 업무에 추가했다. ‘재량간주근로제 운영 안내서’도 발표했다. 주 52시간 상한제는 안녕할 수 있을까.

재량근로제 운영안내서는 ‘공짜노동 꼼수안내서’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

지난달 22일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를 사회적 재난으로 보고 관련 사업장에 ‘인가연장근로’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재량근로제 대상업무를 확대하는 고시와 함께 재량근로제 활용도를 높이겠다며 ‘재량간주근로제 가인드라인’을 내놓았다. 인가연장근로 제도가 노동부 장관 승인만 받으면 무한 연장노동을 허용하는 제도라면 재량근로제는 법정 연장근로 한도에 구애받지 않고 실제 얼마를 더 일하든지 노사가 서면합의한 시간만을 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정부 스스로 주 52시간을 넘는 장시간 노동을 하는 방안을 계속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공짜노동을 막겠다며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했던 정부가 이제 태도를 바꿔 재량근로제 활용을 높이겠다며 “장시간 노동-공짜노동 가이드라인”를 내놓은 것에 다름 아니다.

근로기준법은 재량근로제 대상 업무를 시행령과 고시로 한정하고,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전제로 업무수행에서 노동자 재량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법정노동시간 제도를 완전히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는 재량근로제 확산을 막기 위함이다. 실제 정보통신·게임개발·디자인·방송·영화제작 등 분야에서 저임금-공짜노동, 장시간 노동이 만연해 있는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에서도 2016년 재량근로 대상 노동자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자실한 사건이 사회문제화한 바 있다. 정부는 더 이상 재량간주근로제 활용을 부치기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조속한 유연근무제 개선조치 이뤄야
김영완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김영완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노사관계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매일 거론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세상이 온라인시스템 중심으로 바뀌었으니 일하는 방식과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실제 근로자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 제조업을 제외하고는 집중근로로 성과를 내고 집중휴가로 여가를 즐기는 것이 더 좋다는 근로자가 늘었다.

업종과 업무마다 특성이 다르고 처한 환경도 다르다. 일하는 장소·시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시간베이스에서 성과베이스에 근거한 보상체계도 점차 활성화하고 있다. 특히 수요 중심의 수주형 산업이 확산되면서 수주량, 고객의 니즈 변화 등 수많은 외부요인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연한 근로시간 운용은 노사의 이해득실을 넘어 시급하고 당연한 과제다.

최근 정부가 ‘금융투자분석·투자자산운용’ 업무를 재량근로제 대상에 포함하도록 고시를 개정한 것도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재량근로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재량근로시간제 운영 가이드’를 발표하는 노력도 이어 가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활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 의견도 있다. 사용자가 구체적인 지시를 할 수 없다는 요건을 해설한 것일 뿐 여전히 애매하거니와 활성화를 위한 근본적 해결책으로 보기에는 더더욱 어렵다. 재량근로제를 활성화하려면 대상 업무를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재량권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시·명령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

우리 산업 전체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근로시간만큼은 유연해져야 한다. 국회는 법에 명시된 유연근무제를 개선하는 내용으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현장의 시급성을 감안한다면 입법화 이전이라도 시행규칙 개정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적극적 역할도 필요하다.


노동부, 장시간 노동체제 유지할 생각인가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

노동부의 ‘재량근로제 운영 안내서’는 법을 어긴 사용자 처벌유예, 탄력근로 기간확대, 특별연장근로 허용 추진 등에 이은 또 하나의 노동시간단축 무력화 시도다. 사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1만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 줬다 뺏는 노동존중정부의 노동정책에 실망을 넘어 화가 날 대로 나 있다. 그런데 세계 최장시간 노동국가에서 역사상 가장 의미 있고 강력한 노동시간단축 제도라고 평가됐던 주 52시간 상한제가 시동을 걸기도 전에 길을 막는 장애물들이 계속 설치되고 있다. 예외를 늘리면서 대상이 축소되고 시기가 늦춰지고 있는 것이다.

재량근로제는 노동자 자신에게 재량권을 부여했다는 이유로 노동을 시키고도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 노동시간단축에 역행하면서 공짜노동·장시간 노동을 부추길 뿐이다. 이번 안내서 내용을 보면 업무 성격상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는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를 재량근로 업무 대상으로 확대하고, ‘사용자의 업무지시 가능범위’의 기준을 확대해 ‘해당 노동자의 업무수행 재량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대응차원에서 재량노동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결국 이런 식의 발상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노동계의 대응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뿐이다. 노동존중정부의 노동정책이 본말이 전도되고,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다. 왜 우리가 주 52시간 상한제를 도입하려고 했는지 노동부는 다시 한 번 돌아보길 바란다. 지금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노동존중 정책 그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노동시간단축으로 가는 길, 지금은 노동시간 유연화가 아니라 노동시간 규제가 필요하다.


재량근로제 확대는 노동부 재량 넘은 일탈행위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정책기획국장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정책기획국장

지난달 31일 노동부는 고시를 통해 기존 재량근로시간제 대상 업무에 금융투자분석(애널리스트)과 투자자산운용(펀드매니저) 업무를 추가했다. 금융업이 올해 7월1일부터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주52시간 상한제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노동부가 불과 한 달 만에 재량근로제를 금융업에 적용시킨 것이다.

절차와 내용면에서 볼 때 재량근로제 확대는 노동부의 재량을 넘어선 일탈행위다. 우선 절차면에서 보면, 6월27일 노동부는 재량근로제 확대를 예고하면서 의견제출 기한을 7월4일까지로 명시했다. 행정절차법 46조3항에 의하면 “행정예고기간은 예고 내용의 성격 등을 고려해 정하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20일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노동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데도 8일간의 예고기간만을 정했다.

내용면에서 보면,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는 변호사와 세무사처럼 국가에서 주는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 아니다. 기존에 일하던 노동자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금융투자협회’의 자격증을 취득해 그 업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투자분석사와 투자자산운용사는 근로계약에 따라 약정된 업무를 수행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어서 특별히 재량에 맡길 이유가 없다. 게다가 노동부가 ‘보수 결정방식’까지 재량근로 확대 근거로 삼는 것은 법령 위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사무금융노조는 산하 법률원과 함께 행정소송 등 법률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실과 협력해 노동부의 재량을 넘어선 일탈행위에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다.


탄력근로제, 사용자만 좋은 제도
최승묵 전국집배노조 위원장

최승묵 전국집배노조 위원장

우정사업본부는 명절 특별소통기간 3~4주 단위 탄력근로제를 시행한다. 명절 즈음 우체국에는 택배물량이 평소 대비 두세 배 늘어난다. 백화점·마트 등은 민간 택배회사가 택배물량이 너무 많다며 배송을 거부하면 이를 우체국에 넘긴다. 이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집배노동자들은 주당 60시간에 이르는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시달린다. 해가 짧은 설연휴 기간에는 어둠을 뚫고 이륜차를 몰아야 한다. 얼어붙은 도로를 달리다 보면 미끄러짐 등 갖가지 안전사고에 노출된다.

탄력근로제는 비용절감을 바라는 사용자들만을 위한 것으로서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나쁜 제도다. 집배원 임금을 줄이고 인력증원 요구를 회피할 수 있는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 매년 명절이라는 특정시기가 되면 폭발적인 업무량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도 충분히 미리 세울 수 있다. 인력증원을 통해 노동시간 증가를 방지할 수 있는데도 우정사업본부는 탄력근로제라는 손쉬운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명절이 지난 뒤 집배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탈진한 채 명절을 보낸 노동자들은 이전과 다름없는 업무량을 다시 마주한다. 여름과 겨울은 더위와 추위를 견뎌야 하고, 가을걷이가 끝난 즈음에는 고중량·고부피의 농산물을 처리하느라 땀을 흘린다. 도대체 언제 건강을 돌보라는 말인가. 이대로는 집배노동자 죽음의 행렬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모범사업장이어야 할 국가기관인 우정사업본부는 변형된 노동을 통해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편집부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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