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이주노동자가 출국 후 퇴직금을 수령하도록 하는 제도 탓에 이주노동자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내체류 이주노동자 712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278명)의 이주노동자가 출국만기보험금(퇴직금)을 받는 절차를 알지 못했다. 잔여퇴직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주노동자는 55.8%(397명)로 절반이 넘었다.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주공동행동)과 이주인권연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주노동자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설문내용을 분석한 이주와 인권연구소는 "정부는 미등록 체류자를 줄이기 위해 퇴직금 출국 후 수령제도를 한다고 했지만 미등록 체류자 발생 원인은 고쳐지지 않았다"며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가 이주노동자 차별을 심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만큼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잔여퇴직금 받은 이주노동자 54.3%"

출국만기보험은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퇴직금을 받을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이주노동자 전용보험이다. 사용자는 이주노동자가 매월 통상임금의 8.3%를 적립한다. 이주노동자는 출국 뒤 14일 이내에 출국만기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가 받아야 할 퇴직금 수령액이 출국만기보험으로 적립한 금액보다 크면 사용자는 잔여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는 퇴직금을 수령하기 위해 출국 전 출국예정사실 확인서·거래외국환은행 지정 신청서·보험금 신청서·여권 사본·외국인등록증 사본·비행기티켓 사본 등 6가지 서류를 출국만기보험 전담사인 삼성화재에 제출해야 한다. 퇴직금 수령은 이주노동자 출국 당일 공항 내 은행에서 주로 이뤄지는데 '서류 미비'나 '업무절차상 오류' 등 돌발상황으로 이주노동자가 출국만기보험금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원은 "출국만기보험을 신청하는 곳과 수령하는 곳이 달라 불편한 점이 많다"며 "비행기 타는 시간이 다가오는데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비판했다.

잔여퇴직금의 경우 문제가 심각하다. 이주노동자가 잔여퇴직금과 출국만기보험을 구분하지 못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거나 회사가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지불을 거부하거나 지불금액을 축소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이는 수치로 확인된다. 국내체류 이주노동자 712명 중 사업장 변경 경험이 있는 사람은 335명인데, 이들 중 이전 사업장에서 잔여퇴직금을 받았다는 응답자가 54.3%(182명)에 불과했다. 절반에 가까운 이주노동자가 받아야 할 퇴직금 총액을 보장받지 못한 것이다.

"역효과 내는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개선해야"

우삼열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출국후 퇴직금 수령제도 시행 1년 후 고용노동부는 제도 도입 효과(미등록 체류자 감소에 미치는 영향)가 3.4%라고 발표했다"며 "아무런 실효성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는 2014년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을 개정하면서 만들어졌다. 개정 취지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출국만기보험금 등을 수령하고도 출국하지 않아 불법체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제도가 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주노동자는 근로기준법과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 따라 퇴직일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류지호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상담팀장은 "출국만기보험제도가 제대로 된 퇴직금 제도로 정착하려면 출국만기보험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류 팀장은 "퇴직금을 통상임금의 8.3%만 적립하기 때문에 보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비율이 높다"며 "사업장 변경 제한으로 장기간 재직기간으로 발생하는 퇴직금을 영세사업주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되듯이 현실적으로 그 차액(잔여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출국만기보험금이 퇴직금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월적립 기준금액을 통상임금 기준으로 하지 말고 평균임금의 8.3% 이상을 납입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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