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로 전범기업을 상대로 피해 배상판결을 받아 낸 이춘식(95) 할아버지와 양금덕(90) 할머니가 1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광복 74주년,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회’를 마친 뒤 강제동원 사죄와 배상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팻말을 들고 일본대사관으로 행진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아베는 전쟁범죄를 사죄하라!"

8·15 광복절 74주년을 기념하려 2천여명의 시민이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모였다. 분홍색·주황색·청록색·하얀색 색색의 우비를 입은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일본에 요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가 굵어졌지만 시민들은 우비로 무장하고 우산을 방패 삼아 "우리가 새 역사를 쓰자!" "우리가 역사의 주인이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흔들었다.

강제동원문제 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 15일 오전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대회에는 겨레하나·평화나비 네트워크·양대 노총 통일선봉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석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95) 할아버지와 양금덕(90) 할머니도 대회장을 찾아 일본의 사죄를 촉구했다. 이춘식 할아버지와 양금덕 할머니는 각각 지난해 10월과 11월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징용피해 배상청구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강제동원 문제 이번엔 풀자"

대회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돼 고초를 겪은 조선인들을 기리는 묵상으로 시작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옆사람과 나누던 대화를 멈추고 눈을 감았다.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단상에 올랐다. 그는 "할 말은 많은데 목이 맥혀서(메어서) 말을 못한다"며 "대단히 고맙다"고 했다. 나란히 앉은 양금덕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에는 우리가 당했지만 이제는 한 몸 한 뜻이 돼 일본을 규탄하자"며 "일본 정부와 기업이 사죄하도록 다들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시민들은 함성으로 화답했다.

강원도 강릉에서 KTX를 타고 왔다는 한현정(21)씨는 "중학교 때 할머니에게 친구분들이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들었다"며 "이후 평화나비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며 수요집회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한씨는 지난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열린 1천400번째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이날 대회에 나오려고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를 묵었다. 궂은 날씨에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는 "혼자가 아니라 다같이 함께하니까 힘들지 않다"며 웃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박희진(43)씨는 열한 살과 일곱 살 자녀와 함께 서울광장을 찾았다. 박씨는 "서대문형무소 앞에 동네주민과 함께 'NO 아베' 현수막도 달았다"며 "이번만큼은 강제징용 문제부터 위안부 문제까지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지금은 광주에서 살고 있다는 변하준(11)군은 "한국에 온 뒤 일본인이 한국을 침범했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강제징용 피해자가 우리(후세)를 위해서 죽었다는데 이런 역사를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왔다"고 했다.

"일본과 한국 시민은 적 아닌 친구"

적지 않은 일본인이 이날 대회장을 찾았다. 오다가와 요시카즈 일본 전국노동조합총연합회(젠로렌) 의장은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으로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하며 대법원 판결을 거부하고 있다"며 "이 같은 비정상적인 자세는 아베 정권이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갖고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야노 히데키 일본 강제동원 공동행동 사무국장은 "(한국 대법원) 판결 이후 9개월 지나도록 일본 정부와 기업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거나 배상하지 않고 있다"며 "(강제징용) 피해자의 피해와 인권을 회복하는 그날이 빨리 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헌영 강제동원 공동행동 대표(민족문제연구소 소장)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피해 회복을 요구하는 것은 일본이 역사를 바로잡게 하기 위한 첫 관문"이라고 주장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한일 양국 시민·노동자들이 역사를 바로 세우고 다시는 전쟁의 참혹함과 군국주의를 재현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며 "한반도 노동자와 일본 노동자, 시민과 국민이 힘을 모아 외치고 연대해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시민대회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에서 광화문대로를 거쳐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일본대사관 앞까지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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