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위원장 김지형)가 19일 발표한 22개 권고안을 관통하는 핵심단어는 '민영화 중단'이다. 발전산업을 현 구조로 놔두고서는 김씨와 같은 죽음의 반복을 막을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특별조사위가 발전산업 민영화 구조를 주목한 까닭

석탄발전소 공정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연료·환경설비 운전업무와 정비업무다. 저장된 석탄을 이송해 보일러에 투입하고 증기를 발생시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공정이 연료·환경설비 운전업무다. 컨베이어벨트나 분쇄기, 혼탄장비와 같은 각종 설비를 점검하는 업무는 정비업무다.

보일러를 가동하는 업무를 제외한 두 업무 대부분은 민영화돼 있다. 연료·환경설비 운전은 90년대부터 한전산업개발이 맡았지만 2009년께부터 민간기업에 문을 열었다. 경상정비 부문도 발전 5사가 2005년께부터 민간 정비업체 육성정책을 시작하면서 외주화했다.

민영화한 발전소 현장은 어떻게 운영될까. 석탄 운반에서 보일러 운전, 타고 남은 석탄을 처리하는 탈황·회처리업무는 하나의 컨베이어벨트 공정 속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민영화로 석탄운반 구간별로 다른 하청업체와 계약해 업무를 맡겼다. 공정 곳곳을 서로 다른 업체가 맡게 된 것이다. 컨베이어벨트 구동권한은 사실상 원청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더라도 설비 작동을 즉각 중단시킬 수 없다. 김씨도 가동 중인 컨베이어벨트 설비를 점검하다가 변을 당했다.

“하청업체 실체도 없고, 노무공급 업체에 불과”

조사위는 기술경쟁 도입과 생산비용을 절감하겠다는 외주화 목적도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발전사 하청업체들의 2017년과 2018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15% 안팎이다. 그런데 원청과 맺은 계약서에는 이 같은 이익을 낼 만한 계약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일반관리비와 이윤 항목을 0원으로 설정해 계약한 경우도 있었다. 이윤은 원청이 아닌 노동자 주머니에서 나왔다.

지난해 발전소 경상정비 하청업체의 인건비 지급률은 47.8~61.1%였다. 원청에서 1만원을 받으면 4천780원 정도만 주고 나머지를 회사가 챙겼다. 김씨도 원·하청 계약서상으로는 월 446만원을 받아야 했지만 실제 받은 금액은 212만원이었다. 권영국 조사위원(변호사)은 "하청업체의 유형자산 가액비율을 살펴봤더니 대부분 10% 미만으로 사실상 실체가 없는 기업"이라며 "하청업체는 사실상 노무공급업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지형 위원장은 이날 조사위 발표에서 "위험은 외주화됐을 뿐만 아니라 외주화로 인해 위험이 더욱 확대됐다"며 위험의 외주화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위험한 업무여서 외주화하는 문제도 있지만, 외주화하다 보니 전에 없던 위험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조사위가 발전사의 경상정비 및 연료·환경설비 운전 부문의 민영화·외주화 철회를 가장 우선적으로 주문한 까닭이다. 구체적으로 조사위는 연료·환경설비 운전업무는 발전 5사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것을 권고했다. 경상정비업무는 한전 자회사로 정비업무를 주로 하는 한전KPS로 통합·재공영화하라고 권고했다. 한국전력과 발전 5사·한국수력원자력의 통합을 검토하라고 권고했다.

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의에도 영향 미칠 듯

하청노동자들을 위협하는 것은 사고 위험뿐만이 아니었다. 조사위 활동 결과 발전소 노동자들은 석탄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벤젠·일산화탄소 같은 위험물질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다. B발전소에서는 기준치의 8~16배가 넘는 결정형유리규산이 검출됐다. 석면과 유사한 1급 발암물질이다. 조사위 관계자는 "외주화한 작업현장에서 유해물질이 특히 많이 검출됐다"고 말했다. 김지형 위원장은 "현재 발전소가 운용하는 위험성 평가제도에서 여러 문제점(허점)을 확인했다"며 "안전보건담당 이사를 두는 등 사업주에게 안전에 대해 책임을 부과하는 안전관리조직체계를 구축하고, 원·하청 공동의 안전보건활동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위는 이 밖에도 △산업안전보건 관리감독의 전문성·도립성 향상 방안과 고용노동부 조직개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마련 등을 권고했다.

한편 이날 조사위 발표는 현재 진행 중인 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연료·환경설비 운전 부문의 노·사·전문가 발전 5사 통합협의체는 공공기관을 만들어 비정규직들을 채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경상정비 부문에서도 통합협의체가 꾸려져 논의를 하고 있지만 업체측에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여 진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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