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사히글라스 자회사 에이지씨화인테크노한국 사내하청 해고노동자들이 해고 4년 만에 일터로 돌아갈 길이 열렸다. 지난 23일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승소한 뒤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금속노조>

일본기업 아사히글라스 한국 자회사 에이지씨화인테크노한국이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를 불법파견으로 사용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제조 과정의 일부 공정을 하청업체에 도급을 줬다고 하더라도 전후 작업에 영향을 주고, 실질적인 지휘·명령을 했다면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는 판결이다. 제조업에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문자 통보로 해고된 아사히글라스 비정규 노동자들이 해고된 지 4년 만에 공장으로 돌아갈 길이 생겼다.

대구지법 김천지원, 해고노동자 승소 판결

25일 금속노조에 따르면 대구지법 김천지원 민사1부(부장판사 박치봉)는 지난 23일 에이지씨화인테크노한국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2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에 관한 소송(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선고 재판에서 "피고(회사)는 원고에게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라"고 주문했다.

아사히글라스는 2004년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에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입주했다. 공장을 세운 뒤 한국 정부에서 39만6천694제곱미터(12만평)에 이르는 공장부지를 50년간 무상으로 임대받고, 5년간 국세 전액감면·15년간 지방세 감면 특혜를 받았다. 고용창출을 위해 시행한 특혜였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 처우는 회사가 받은 혜택과는 달랐다.

사내하청 노동자인 차헌호 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장은 "비정규직에게 최저임금을 주면서 3교대와 주야 맞교대 근무를 번갈아 가며 시켰다"며 "점심시간은 20분에 불과했고 회사에 밉보이는 노동자에게는 붉은 조끼를 입혀 왕따·인권침해를 야기했다"고 근무환경을 증언했다.

이 회사에서 ㈜지티에스를 포함해 3개 사내하청업체 노동자가 일했다. 이 중 지티에스에서 2015년 5월 노조가 만들어졌다. 설립 한 달 만인 6월 원청은 지티에스와 도급계약이 6개월여 남았는데도 계약을 해지했다. 지티에스 비정규직 178명은 문자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민사소송 4년 만에 1심 판결
형사재판에도 영향 줄 듯


길고 긴 해고노동자의 복직투쟁이 시작됐다.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는 해고 발생 다음달인 2015년 7월13일 원청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같은달 21일에는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구미지청에 회사를 부당노동행위·불법파견 혐의로 고소했다. 노동부는 2년이 지난 2017년 8월31일에야 부당노동행위는 무혐의, 불법파견 혐의는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같은해 9월22일에 지티에스 노동자 178명을 직접고용하라는 행정지시를 했다. 회사는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고, 노동부의 17억8천만원 과태료 처분도 불응해 행정소송을 냈다.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러는 사이 해고자 178명 중 지회에 남아 복직을 요구하는 노동자는 23명으로 줄었다.

노동부에서 검찰로 넘어간 불법파견 혐의 수사 속도도 더뎠다. 2017년 8월 사건을 넘겨받은 대구지검 김천지청은 같은해 12월 불법파견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지회가 무혐의 처분에 반발해 제기한 항고를 받아들여 지난해 5월에야 재수사명령을 했다. 이후에도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검찰은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에 결론을 내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2월 수사심의위는 불법파견 혐의를 받는 원청을 기소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2월15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23일 선고는 2015년 7월13일 해고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결과다. 1심이 나오는 데 4년이 걸렸다. 재판 과정에서 원청은 지티에스가 유리세척·절단공정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생산을 맡고 있다며 합법도급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원청)는 정기적으로 작업지시서 등을 지티에스 노동자들에게 교부하는 것 외에도 긴급하게 작업할 필요가 있는 제품에 대해 진행하고 있던 작업을 중단시키고 다른 제품을 먼저 처리하도록 지시했다"며 "(지티에스가 맡은 공정은) 피고가 담당하는 공정과 혼합돼 있어 전후 작업이 상호 연동돼 영향을 받으며, 원고들이 피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 요소가 적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 사건 계약은 외형상 사내도급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노동자 파견의 역무를 제공받는 것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원고들이 피고로부터 실질적인 지휘·명령을 받는 노동자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파견법에 따른 파견 허용업무가 아닌 제조업에 불법파견을 사용했기 때문에 원청이 파견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사자들 "원청 아사히글라스, 사용자 책임 가져야"

노동자들을 대리한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설령 비정규직으로만 운영되는 공정이든, 직접제조 공정과 떨어져 있든 제조업 사내하청 사용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판례가 나오고 있는데 이번 아사히글라스 재판에서도 이런 경향을 확인했다"며 "파견법 위반 형사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송 당사자인 차헌호 지회장은 "해고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은 소송이 길어진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른다고 하더라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재판을 통해 원청이 사용자라는 점이 인정된 만큼 일본 아사히글라스 본사를 상대로 사용자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지회는 다음달 일본 아사히글라스 본사 항의방문을 하고 대화를 요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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