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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견 판결을 받아 원청에 직접고용된 노동자에게 적어도 원청 최하위직급 노동조건은 보장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를 직접고용할 때 별도직군을 만들어 기존 정규직과 차별하는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종·유사근로자 없으면 기존 근로조건+α”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42민사부(재판장 박성인)는 한국수력원자력 용역업체에서 일하다 불법파견 확정판결을 받고 원청에 직접고용된 무기계약직 노동자 8명에 대해 “(한수원 최하위직급인) 5(갑)직급 근로자 지위에 있다”고 판결했다.

김아무개씨를 포함해 소송을 제기한 노동자들은 빠르게는 1997년 1월부터, 늦게는 2005년 11월부터 한국전력공사나 한전에서 분사한 한국수력원자력 용역업체인 한전KPS 또는 한빛파워에서 일했다. 냉난방 관리와 열 관리, 발전작업 보조, 화학시료 채취, 옥외 변전소 보조 업무를 했다.

노동자들은 2010년 6월 한빛파워에서 계약만료를 통보받자 한수원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2015년 11월 “한수원으로부터 직접 지휘·감독을 받는 근로자파견 관계에 있다”고 판시했다.

한수원은 확정판결 직전 기능직인 5급직을 갑급과 을급으로 분리했고, 김씨 등을 5(을)직급에 고용했다. 용역업체에서 일할 때와 급여는 같고 복지는 조금 높은 수준이다.

노동자들은 자신들과 같거나 비슷한 일을 수행하는 4(을)직급의 노동조건을 적용하거나 적어도 5(갑)직급 노동조건을 적용해 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은 노동자들의 4(을)직급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와 4(을)직급 근로자의 업무 강도나 양, 업무범위와 난이도, 책임과 권한, 전문성 등에 있어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원고 노동자들에 대한 5(갑)직급 노동조건 적용은 인정했다. 노동자들이 한수원에 직접고용된 것으로 간주되거나 고용의무가 시작될 때의 원청 취업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6조의2 3항은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없는 경우 해당 파견근로자의 기존 근로조건 수준보다 낮아져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파견법 조항은 파견근로자에게 적용해야 할 근로조건의 하한을 설정하고 있을 뿐이라 해석된다”며 “기존 근로조건의 수준보다 저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어도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 중 가장 낮은 수준의 근로조건을 적용받는 근로자와 동일한 근로조건이 적용돼야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자의적 기준 따른 차별 안 돼”

이번 판결은 불법파견 판결을 받아 원청에 직접고용된 노동자 노동조건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불법파견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면서 뚜렷한 근거 없이 별도직군이나 기간제로 고용하는 사업주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전KPS는 2016년 6월 하청노동자 42명을 직접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노동자들에게 2년 기간제로 일한 뒤 무기계약직으로 일할 것을 종용했다. 노동자들이 반발하자 옛 파견법에 따라 직접고용된 것으로 간주되는 노동자는 무기계약직으로, 고용의무 조항을 적용받는 노동자는 기간제로 일하라고 제안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중재에 따라 별도직급을 새로 만들어 고용하되 하청업체 경력을 인정해 주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노동자들을 대리한 권영국 변호사(전 민변 노동위원장)는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할 때 자의적으로 기준을 만들어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에 제동을 건 판결”이라며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분리·차별처우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도 던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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