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애진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특히 그 자녀의 입시와 관련된 기사들이 언론 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부의 세습이 당연시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입시만은 세습되지 않는 기회평등의 보루라고 믿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믿음은 대부분 고등학생들이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진학한다는 사실을 아주 당연한 전제로 한다.

그러나 뜨거운 논란 속에 철저히 소외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특성화고 학생들이다. 실제 특성화고 학생들의 존재는 산업재해사고가 나야 비로소 기사화된다.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에서 일어난 현장실습생의 뇌출혈, 2012년 한라건설 작업선 전복 사망, 2014년 CJ제일제당 육가공 공장과 2016년 외식업체 토다이 일터 괴롭힘에 의한 자살사고, 2017년 LG유플러스 협력업체 LB휴넷에서 휴대전화상품 해지 방어업무를 수행하던 고3 실습생 자살사고, 그리고 같은해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제주 제이크리에이션 음료제조공장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프레스기에 목이 눌려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수많은 부상사고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도 못했다.

현장실습생 산재사고를 두고 관계부처가 서로 책임소재를 다투는 사이 실습현장에서는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 등 강행법규의 최저기준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63년 산업교육진흥법에서 ‘산학협동’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밖 노동현장에 학생들을 내보낼 수 있게 한 것을 시작으로 1973년 법 개정을 통해 현장실습이 모든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의무화됐고, 1995년 동법이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산학협력법)로 개정돼 1997년 제정된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직업교육훈련법)과 함께 시행되고 있는 현재까지 전문계·특성화고 학생들의 기본권은 제대로 보호·보장되지 못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른바 진보교육학자 주도로 학력고사제도가 수능으로 변경되고, 학생부종합전형·학생부교과전형처럼 학생 각자의 적성과 특기를 살리고 창의성을 도모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입시제도가 도입됐지만 현장실습제도는 이렇다 할 변화 없이 무려 50년 동안이나 전문계·특성화고 학생들을 산업체에 저임금 노동자로 공급해 왔다는 사실이다.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과 고교 졸업 후 일터로 나가는 학생의 헌법상 기본권에 어떠한 본질적 차이가 있는지 묻고 싶다.

그동안 학부모·청소년 노동인권단체·전교조 등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이 교육 본연의 역할을 포기한 채 학생들에게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제도 폐지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달 2일 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그동안 법 없이 운영돼 오던 병폐적 제도가 법률로 더욱 공고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우선 도제교육을 받는 학생을 노동자로 규정할 수 있게 돼 학생신분에 따른 보호는 뒷전으로 밀려날 우려가 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은 3학년 2학기부터 시행하지만 도제학교는 1학년 때 희망자를 대상으로 도제반으로 진학할 학생을 선발해 2학년부터 학교와 기업을 오갈 수 있게 함으로써 더 일찍, 장기간 학생들을 산업현장으로 내몰 수 있다. ‘현장실습보다 더 나쁜 일학습병행제’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일학습병행지원법 제안이유에서 스위스와 독일의 직업교육훈련제도(도제교육)를 착안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노동환경이 스위스나 독일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며, 입법목적에서도 드러나듯 일학습병행지원법은 ‘전문인력 발굴’ ‘학습권 보장’ 대신 ‘산업수요 적극 반영’을 명시함으로써 필요한 산업체의 수요에 맞게 ‘학습근로자’를 제공하겠다는 내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른바 도제식 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노동자 신분을 부여하겠다고 하면서 정의 규정에 근로기준법을 따를 것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것 등을 명시하고 있지만, 학습을 빌미로 노동을 제공했다면 굳이 노동자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근로기준법 보호대상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법률에 의해 ‘학습근로자’ 보호가 강화되거나 권리가 향상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학습기업 규모 제한이 없어 적절한 도제교육 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운 영세 사업장에까지 학생들을 내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학생들이 실습교육은 고사하고 위험한 노동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근로시간에 관해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장 외에서의 교육훈련시간’은 학습근로시간에 포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규정해 임금 저하 가능성도 열어 뒀다. 그 외에도 지면에 담을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 궁극적으로 이 법은 ‘도제’라는 수사로 포장돼 병폐적 현장실습제도를 유지·강화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누구보다 이 법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이는 산재로 사망한 특성화고 학생의 유가족일 것이다. 자식을 잃고 난 후에야 법·제도 미비를 알았고, 교육부·고용노동부 등 정부부처는 물론이고 교육감·학교 관계자 그 누구도 자식의 죽음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통탄했다. 이제는 만들어진 법조차 그들을 배반한다. 그들은 위험하고 불안한 노동환경에 자식을 내맡겨야 하는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주길 바라면서 법과 제도를 바꾸는 싸움을 하고 있다. 입법권을 가진 자들, 정책과 제도를 만들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는 동안 대입수험생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고3 특성화고 학생이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권한을 가진 자들은 때때로 만들어진 법과 제도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법을 어기지는 않았다’는 무책임한 발언이 유가족 가슴에 비수로 꽂힐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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