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이 한국도로공사가 외주용역업체 소속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해야한다고 판결한 29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맞은편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수납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대법원이 한국도로공사가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실제 사용자라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공사가 해당 노동자들을 수년간 불법파견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소송에 나선 비정규 노동자들은 공사 소속 정규직 전환을 앞두게 됐다. 공사와 톨게이트 노동자 사이의 고용관계는 여러 공공기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다.

◇"불법파견" vs "합법도급" 6년 논쟁 종식=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9일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소송에는 공사 하청업체 노동자 368명이 참여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과거 공사 소속 정규직이었다. 공사는 외환위기 이후 외주화를 추진했다.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을 밀어붙이던 2008년 12월께 모든 톨게이트 요금수납 업무를 외주화했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2013년 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자신들이 파견근로를 제공했는데 일정 기한이 지나도 자신들을 직접고용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직접고용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파견법은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해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경우 직접고용한 것으로 보거나 직접고용 의무를 부여한다. 공사측은 “협력업체와 파견근로가 아닌 합법적인 도급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공사가 불법파견을 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원고와 피고가 상호 유기적인 보고·지시·협조를 통해 업무를 수행했고 △외주사업체가 원고들에 대한 근무태도 점검·휴가 등에 관한 사항을 독자적으로 결정했다고 보기 어렵고 △외주사업체 대부분이 별도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고 별다른 자본을 투자하지 않은 것을 불법파견 판결의 근거로 삼았다.

대법원은 “피고는 업무 범위를 지정하는 것을 넘어 규정이나 지침 등을 통해 원고들의 업무수행 자체에 관해 지시를 했다”며 “원고들과 피고 영업소 관리자는 전체적으로 하나의 작업집단으로서 피고의 필수적이고 상시적인 업무를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원고들은 피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다”고 판결했다.

◇사직·해고 상태, 고용의제·고용의무에 영향 없어=비슷한 취지의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소송 참가자 중 304명이 해고된 상태다. 공사는 지난해부터 전체 6천500명 규모의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자회사를 세워 고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1천500명이 자회사 전환에 반대해 해고됐다. 해고자들은 모두 같은 취지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대법원은 이날 “파견법에 따라 직접고용간주 또는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 이후 파견근로자가 파견사업주에 대한 관계에서 사직하거나 해고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은 원칙적으로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의 직접고용간주나 직접고용의무와 관련한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해고나 근로계약 종료 여부가 직접고용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확인한 최초의 판례다. 같은 판결이 이어질 경우 해고자 전원이 공사 정규직으로 채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된 후 같은 일을 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공사 관계자는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 결과를 존중하며 공사 직원으로 의제되거나 공사에 채용의무가 있는 사람들의 법적 지위를 인정할 것”이라며 “9월 초에 이강래 사장이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고 “민간기업도 아닌 정부 주도로 불법행위 피해자 상태로 20년 가까이 방치됐던 톨게이트 노동자가 문재인 정부가 아닌 대법원 판결로 비로소 불법 상태를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만약 정부와 공사가 오늘 판결 효력을 재판 참가 노동자로만 축소할 발상을 하고 있다면 정신 차려야 한다”며 “이강래 사장은 노동자에게 떠안겼던 끔찍한 고통에 대해 사죄하고 1천500명 해고자 전원을 즉각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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