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우리가 이겼대."

대법원이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을 직접고용하라고 판결한 사실이 알려지자 서울 서초구 대법원 맞은 편에 줄지어 앉아 있던 요금수납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박진옥(57)씨는 "어떡해"와 "감사합니다"는 말을 되뇌었다. 박씨는 "너무 당연한 판결이지만 그동안 핍박받아온 게 있어서 혹시나 하고 마음 졸였다"고 털어놨다. 눈가는 금세 촉촉해졌다.

29일 오전 대법원이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공사에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라고 판결했다. 368명의 요금수납원들이 2013년 소송을 제기한 지 6년 만이다. 집회에 참가한 1천여명의 요금수납원들은 "우리가 이겼다"고 외쳤다. 몇몇 조합원들은 서로 얼싸안고 "수고했다"며 동료의 등을 토닥였다. 이날 민주일반연맹·한국도로공사톨게이트노조는 입장문을 내고 "불법파견 인정과 직접고용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며 "판결의 효력은 1천500명 해고 요금수납원 모두에게 일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옳았다는 것 증명받아 기뻐"

요금수납원이 2015년 1심과 2017년 2심에서 모두 승소한 뒤 정부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하자 도로공사는 6천500명 요금수납원들에게 자회사 전적을 제안했다. 5천여명은 자회사 전적을 수락했지만 1천500명가량은 제안을 거부했고 지난달 계약만료로 집단해고됐다. 일자리를 잃은 요금수납원들은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와 청와대 앞에서 고공·노숙농성을 이어 왔다.

이번 판결을 이끈 368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현재 개별 소송을 진행 중이다. 박진옥씨는 "제가 청구한 소송건은 아직 1심 법원에 계류 중"이라며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대법원 판례가 생겼으니 좋은 결과가 앞으로도 나오지 않겠냐"며 웃었다. 지난 3월 소송에 참여해 1심에 사건이 계류 중이라는 권 아무개(53)씨도 "300명이 먼저 가고(직접고용되고) 나머지 요금수납원이 나중에 승소한다 해도 쉬운 길이 아니란 건 안다"며 "그래도 이번 판결이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과 같은 처지인 박주분(51)씨도 "지금까지 했던 투쟁이 정당했고 소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집회 중간에 장대비가 쏟아졌지만 색색의 비옷을 입은 조합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구호를 외치거나 투쟁가에 맞춰 춤을 췄다. 우산과 비옷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비 피할 곳을 찾아 헤매던 조합원들은 "지금 상황에서 비 안 맞는 게 더 중요하냐"는 동료의 핀잔에 웃음을 터뜨렸다.

"직접고용만이 답이다"

이번 판결로 공사에 직접고용되는 양염숙(56)씨와 김정화(60)씨는 2002년부터 함께 일한 동료다. 두 사람은 용역업체 시절 서러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회사 전적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16년 일하고 있는데 덤프트럭이 그대로 요금부스를 덮쳤어요. 다치긴 했지만 다행히 큰 외상이 없었는데 회사는 깨진 유리 파편들을 모두 치우고 가라고 하더군요. 제 손으로 운전하며 병원을 가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왔어요. 정산해 보니 6천원이 빈다고. 나중에 그 돈을 제 월급에서 공제했어요. 도로공사가 재계약 안 해 줄까 봐 산재신청도 안 해 줬고요."

김정화씨는 당시 휴대전화에 담긴 사진을 하나하나 보이며 울분을 터뜨렸다. 김씨는 "자회사는 또 다른 용역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양씨는 "사장 마음에 안 든다고 퇴근 길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면서 쓰레기 주워라고 하면 줍고 용역업체 다닐 때는 (회사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며 "자회사는 기존 용역업체 여러 개를 합쳐 놓은 큰 덩어리의 용역업체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김씨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한국도로공사가 직접고용한다 해도) 길거리 청소를 시킨다든가 업무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도로공사 관계자는 "수납원들을 고용하더라도 원래 업무인 요금수납은 맡길 수 없다는 입장에 큰 변화는 없다"고 전했다.

노조·연맹은 요금수납원 1천500명 직접고용 쟁취를 위한 고공·노숙농성을 이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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