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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기사승인 2019.09.02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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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훈 기자
비 한바탕 요란하게 쏟아지곤 부쩍 하늘이 높다. 가을볕에 젖은 옷을 말린다. 전날 대법원 앞에서 사람들 환호성이 하늘을 찔렀고, 보 터지듯 물이 왈칵 퍼부었다. 가방에서 척척 우비 꺼내 입었는데 소용이 적었다. 된바람에 수평으로 퍼붓던 물줄기에 그만 흠뻑 젖고 말았다. 누군가 우리의 눈물이라고 했는데, 왈칵 우는 이가 거기 많아 어색하지 않았다. 비 예보를 미처 살피지 않은 나는 거기 네모난 빌딩 한 뼘쯤 되는 창틀 아래 몸 사린 채 젖어 갔다. 이판사판, 빗속에 나설 용기를 겨우 내어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서야 그들 젖은 눈과 맞잡은 손과 부둥켜 서로 감싼 어깨 모습 얼마간을 겨우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용기 내어 길에 나선 사람들은 오래도록 그랬을 테다. 다시 찾은 청와대 앞 농성장에서 저들은 빼곡한 향후 투쟁계획을 읊었다. 이겼지만 끝나지 않은 싸움이 다시 첫날이다. 폴리스라인과 가로수 사이 매단 줄 여기저기에 빨래를 넌다. 비닐로 꽁꽁 싸 길가에 쌓아 둔 커다란 여행가방과 침낭과 접이식 텐트를 정리한다. 오후 날씨 예보를 꼼꼼하게 살핀다. 우비 따위 준비물을 미리 꺼내 둔다. 소나기 예보란다. 아뿔싸, 옥상에 널고 온 이불 걱정을 했다. 침대 매트리스엔 아이가 크면서 남긴 흔적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세계지도처럼 활짝 새겨졌다. 지난여름, 나는 도대체 마르질 않던 빨래와 씨름했다. 하늘 푸르고 구름 높아 이제는 보송보송 마르겠지, 지도 작업도 언젠가 멈추겠지, 나는 기대한다. 자주 그랬듯 예보가 빗나가길 바랐다. 젖은 농성물품을 말리는 동안 사람들은 수다를 떤다. 건조한 농담이 한결 가볍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에도 전원 직접고용 전망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고 누군가 둘러앉은 자리에서 얘기했다. 같은 내용 손팻말 들고 촉구하느라 사람들 오늘도 길에 남아 빨래를 넌다. 소나기 또 언제 쏟아부을지 몰라 예보를 살핀다. 불안한 전망이 빗나가기를 바란다. 빨래 걷고 성과 거둘 날을 기약한다.

정기훈 photo@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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