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비스연맹
"일주일 뒤면 추석이에요. 누군가는 (휴무자를 뽑는) 제비뽑기에 당첨돼 가족들과 만나겠죠.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직원과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추석에 남아 일하는 직원들로 나뉠 겁니다. 이게 면세점 노동자의 현실입니다"

유통산업 노동자들이 건강권과 노동권 보장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며 국회를 찾았다. 제비뽑기로 휴가자를 정한다는 면세점 얘기는 김인숙 부루벨코리아노조 조직국장이 증언했다. 부루벨코리아는 외국 유명브랜드 상품을 수입해 국내 면세점에 공급하는 회사다. 부루벨코리아노조는 면세점 화장품·의류매장에서 판매업무를 하는 판매직 노동자로 구성돼 있다. 면세점은 한 달에 두 번 쉬는 대형마트와 달리 365일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물론 명절에도 문을 연다. 이러니 명절 때마다 순번을 정해 쉬거나 제비뽑기로 휴무자를 정하는 일이 반복된다.

유통업 노동자들이 4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서비스연맹·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전국네트워크·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우원식·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종훈 민중당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이들은 "판매노동자도 쉴 때는 쉬면서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며 "정부와 국회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가 법·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설날·추석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라"

인권위 전문위원회는 올해 6월 ‘대규모 점포 등에 근무하는 유통업 종사자의 건강권 증진을 위한 제도 개선 권고’를 의결했다. 8월에는 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영업시간 제한·의무휴업일 적용대상 범위 확대 검토 △휴게시설 등 유통산업 노동자 작업환경 실태조사 후 '유통산업 발전 기본계획' 수립시 반영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근로자 휴게시설 설치 및 그 세부기준 이행 현황 점검' 조항 신설을 권고했다.

서비스연맹은 정부에 인권위 권고 이행과 법·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라고 요구했다.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 적용대상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 대형마트를 포함한 대형유통매장은 유통산업발전법(12조2)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한 달에 두 번 의무휴업일을 지정·시행하고 있다. 서비스연맹은 의무휴업 대상 점포를 늘리고, 의무휴업일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2016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개정안에는 백화점과 면세점을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하고, 추석과 설날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종훈 의원은 “1년 365일 영업방침으로 면세점 노동자들은 여행을 떠나는 고객들 뒷모습만 쳐다봐야 한다”며 “국회는 조속히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좁은 휴게공간, 비상계단에서 쉰다"

백화점·면세점·복합쇼핑몰 등 유통산업 노동자는 휴식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바쁠 때는 화장실도 가기 어렵다. 대부분 하루 종일 서서 일한다. 적지 않은 노동자가 하지정맥류와 방광염 등 직업병을 앓는다. 나윤서 록시땅코리아노조 위원장은 "백화점 직원용 휴게실은 30개 의자를 300명이 사용해야 하는 구조"라며 "직원들은 멀고 비좁은 휴게실에 가지 않고 비상계단에서 박스를 깔고 휴식을 취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연구팀이 백화점·면세점 판매노동자 2천806명의 노동환경과 건강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매장 내 의자가 없다"는 응답이 27.5%였고, 37%는 "의자가 있어도 앉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선규 서비스연맹 부위원장은 “정부는 휴게시설 미비와 선 채로 대기 강요, 고객용 화장실 사용금지 같은 대형유통매장의 노동자 건강권 침해를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용득 의원은 "전국에 있는 주요 면세점과 백화점 매장이 100개가 되지 않는다"며 "노동부가 마음먹고 관리·감독을 한다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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