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명절이 안 왔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나 좋지…."

우체국 위탁택배 노동자 김준영(56·가명)씨는 명절이 두렵다. 평소보다 물량이 50%가량 증가해 점심을 챙겨 먹을 여유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는 5일에도 점심을 차 안에서 편의점 김밥으로 때웠다고 한다.

김씨는 새벽 5시40분까지 우체국 물류터미널인 동서울우편집중국으로 출근한다. 자신이 배달할 물량을 직접 분류하고 차량에 싣는다. 물량을 모두 싣고 집중국에서 출발하는 시간은 오전 11시. 성수기가 아닌 때에도 하루 평균 5시간가량의 ‘공짜노동’을 한다. 분류시간은 임금을 주는 노동시간에 들어가지 않는다. 김씨는 배달 한 건당 수수료를 받는 자영업자 신분이다. 명절이나 김장철 같은 성수기에 김씨는 오후에 한 번 더 물건을 실으러 관할 우체국을 가야 한다. 우편집중국에 물량을 쌓아 둘 공간이 부족한 탓에 일부 물량은 분류하지 않은 채 그대로 지역 우체국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오후에 한두 시간 추가로 분류작업을 한다. 하루 7시간은 공짜노동을 하는 셈이다.

서비스연맹·참여연대·택배노동자기본권쟁취투쟁본부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석 배송물량이 급증해 분류작업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며 "택배사와 우정사업본부·우체국물류지원단은 공짜 분류작업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택배연대노조·전국택배노조에 따르면 CJ대한통운·로젠택배 같은 민간 택배회사 소속 노동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CJ대한통운에서 일하는 택배노동자는 아침 7시에 물류터미널로 출근하지만 분류작업을 모두 마친 뒤 오후 한두 시에 배달을 시작한다. 배달 시작시간이 늦으니 자연히 마무리하는 시간도 늦어진다. 추석을 한 주 앞둔 요즘은 밤 11시까지 배달하는 일이 태반이다.

이 때문에 분류작업 인력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CJ대한통운 같은 민간 택배회사에서는 일부 알바노동자를 고용하기도 하지만 공짜노동을 근절하기엔 역부족이다. 우정사업본부도 집중국에서 분류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우정실무원을 고용하고 있다. 그런데 택배연대노조는 지난 3월 우정사업본부가 우정실무원 450여명을 줄였다고 주장했다. 진경호 택배연대노조 우체국본부장은 "우정사업본부는 분류 인력을 축소하고 위탁택배 노동자들에게 추가 비용을 주지 않으면서 공짜노동을 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을 촉구했다. 지난달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생활물류서비스법 제정안은 택배운전 종사자와 택배분류 종사자를 구분해 분류업무가 택배노동자 업무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택배노동자에게는 분류작업을 시킬 수 없다.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은 "택배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4시간"이라며 "생활물류서비스법을 제정하고 분류작업을 개선해 장시간 노동 문제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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