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영 청년유니온 교육팀장

“지난번에 제주도에서 했던 여름캠프 기억이 너무 좋아서요.”

“저는 이번이 세 번째 참여인데요. 올해는 기획단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한국산업노동학회에서는 매해 신진연구자 여름캠프를 진행한다. 노동문제를 연구하는 대학원생과 신진연구자들이 자신의 고민이 담긴 학술적 글을 발표하고 선배 연구자들이 조언해 주는 자리다. 2012년부터 매해 여름 열리고 있다. 이곳에서 발표되는 글과 토론은 늘 유익하지만, 올해는 참가자들의 자기소개가 유독 인상 깊었다. 많은 참여자가 몇 해 전부터 참여했는데 그때의 ‘좋은 기억’ 때문에 또다시 찾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캠프가 남긴 ‘좋은 기억’은 나에게도 있다. 처음 참여한 지난해 신진연구자 여름캠프에서 청년유니온 운동과 관련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오랫동안 청년유니온을 관심 있게 지켜본 선배 연구자로부터 촘촘한 코멘트를 받을 수 있었다. 우수 발표로 선정돼 일본 사이타마대학에서 열린 한일노동포럼에서 다시 한 번 발표할 기회도 얻었다. 캠프를 통해 알게 된 많은 인연은 고민이 들 때마다 찾아갈 수 있는 소중한 동료가 됐다. 애정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주변에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올해 더 많은 동료들이 참여했다.

주변에 캠프 자랑을 좀 했더니 비결이 뭐냐고 묻는 다른 전공의 지인에게 ‘입소문’이 중요하다고 말해 줬다. 내가 그랬듯 캠프가 좋다고 여기저기서 입소문이 퍼지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모이기 마련이다. ‘좋은 코멘트’는 대학원생들이 늘 갈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화를 하면서 입소문 이전에, 신진연구자들의 적극적 참여 이전에, 아주 오랜 기간 선배 연구자들이 쏟은 적극적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입소문은, 토론비를 받지 않는데도, 아직은 완전하지 않은 글이 발표되는데도 좋은 코멘트를 주기 위해 고민하는 선배 연구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동연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신진연구자 유입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마음과 치열한 고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일정이 닥쳐서야 ‘이번에는 발표해야지?’ 하는 압박스러운 닦달로는 대학원생들을, 좋은 발표문을 끌어모을 수 없다. 이곳에 모이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한두 해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최근 청년세대의 노동조합에 관한 인식 관련 연구를 하면서 노조활동을 하는 청년들과 조직부서 담당자들을 만나 뵙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학원생이 학술행사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와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결국은 맞닿아 있었다. 노동조합의 존재이유를 알지 못하는 누군가는 조합비 3만원을 “탕수육 사 먹을 돈”으로 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탕수육 대신 노조활동을 선택한 청년들은 일터에서의 변화를 목격한 경험을 활동 시작과 지속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계기로 꼽았다.

이들이 3만원으로 무엇을 하는 게 나에게 이득인지 따지는 ‘가성비 세대’ 혹은 ‘요즘 애들’이어서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중요한 선택에 앞서 효용을 따진다. 참여하면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데 동참한다는 뿌듯함, 이곳에 가면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도 괜찮다는 안전감 등이 우리를 움직인다. 청년유니온에 함께하는 조합원들이 유니온을 찾아오는 이유도, 청년유니온이 조합원에게 제공하고 싶은 것도, 나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공간과 함께 만드는 사회 변화, 그 과정에서 공유하는 다양한 감정이다.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 채 절대적인 당위만을 두고 왜 우리를 따라오지 않느냐고 보채는 것은 무용한 외침일 뿐이다. 선배가 신입사원에게 노조 가입서를 들이밀고 가입하라고 강요하면 당장 가입서는 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가입한 이에게 적극성까지 기대할 수는 없다. 이 또한 단기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보다 긴 호흡으로, 다그치기보단 보여줌으로써 설득해야 한다. 활동의지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우연히 등장하는 것 같지만 이 우연 이전에는 누군가의 아주 오랫동안 이어 온 치열한 고민이, 그 고민에서 시작된 변화들이, 그 변화들이 퍼져 나가는 입소문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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