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2018년 근로복지공단은 11만4천687건의 산업재해 신청사건을 처리했다. 10만4천901건은 승인했고, 9천786건은 불승인했다. 승인율이 91.5%다. 이 중 1만6건의 업무상질병 사건 평균 처리기한은 166.8일(근골격계질환 108.7일, 뇌심질환 103일, 직업성 암 341일, 정신질환 179일 등)이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기한 20일 규정은 사문화된 지 오래다.

산재보험제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산업재해보상보험법 1조)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동자들은 신속함과 공정함을 거의 느낄 수 없다. 산재보험법 시행규칙 21조는 요양급여 신청을 받으면 7일 이내 산재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질병판정위 심의기간, 조사기간, 서류보완기간, 역학조사기간 등은 ‘처리기간 7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법의 목적에 위반되는 시행규칙 내용과 사건 증가 사유로 공단과 고용노동부는 신속한 보상이라는 원칙을 버렸다.

근골격계질환을 보더라도 현재 산재신청을 위해서는 ‘주치의사 소견→공단 지사 자문의사 평가→특별진찰 의사 판단→판정위원회 의사 상병 확인절차(필요시 소위원회)’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상병확인 과정만 최소 세 번 반복한다. 산재 결정 처리기한 증가는 곧 노동자에게 ‘불안감·생계문제·치료 미비 상태 직장 복귀 등’으로 전가된다. 노동부는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

일단 주치의사와 공단 자문의사 소견이 “업무관련성이 높은 경우”라면 질병판정위 심의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2006년 12월13일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합의한 ‘산재보험 제도 개선에 관한 노사정 합의문’에서는 업무상질병 판정 때 질병판정위를 설치하되 “주치의·사업장·자문의 의견을 종합 고려해 업무상질병이 명확한 경우 제외”라고 명시했다. 기존 합의에서 노동자에게 유리한 사항은 시행해야 한다.

둘째, 특별진찰시 업무관련성을 인정할 경우 당연승인 결정을 해야 한다. 현재 근골격계질환(6대 다빈도 상병)·뇌심질환(사인미상 등)·정신질병(일부상병)·자살 등에 있어 특별진찰제도(공단 산재병원의 조사 및 판단)를 운영하고 있다. 공단 자문의사나 특별진찰 결과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판정했는데도 현행처럼 질병판정위에서 인정하지 않는 제도는 불필요한 행정일 뿐이다.

셋째, 직업성 암은 당연인정기준을 확대해야 한다. 2018년 반도체·디스플레이 8개 상병에 대해 업무관련성 전문조사가 생략됐다. 전문조사 생략 대상은 2019년 2월 ① 석면에 의한 원발성 폐암 ② 석면에 의한 악성중피종 ③ 탄광부·용접공·석공·주물공·도장공에 발생한 원발성 폐암 ④ 벤젠에 노출돼 발생한 악성림프·조혈기계질환으로 확대됐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종에서 전문조사가 생략된 배경은 무엇보다 법원(판례)에서 당해 상병이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법원 판결과 기존 역학조사 사례, 질병판정위 판정례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직업성 암의 당연인정기준을 확대하고, 역학조사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

산재신청 과정에서 공정성을 확보하도록 제도보완이 필요하다. 최근 승인율이 증가했다고 하더라도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공정함은 다른 것이다. 공정한 보상제도를 위해서는 첫째, 노동자들의 자료요구권과 산재신청 권리가 법률에 명시돼야 한다. 산재보험법 116조는 사업주 조력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벌칙조항이 없다. 사업주의 방해와 은폐행위를 막는 가장 실효적인 방안은 노동자의 법적 권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다.

둘째, 공단은 서면조사보다 대면조사·현장조사 원칙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현재 업무상질병의 경우 서면조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재해자 문답서는 최소 5장 이상이며, 정신질환은 15장 내외로 분량이 상당히 많다. 특히 전문지식이 없는 경우 제대로 작성할 수 없다. 근골격계질환에서 각 업무시 관절 기능각도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사업주 의견서와 문답서, 제출자료 등은 반드시 노동자에게 보내 반론 제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셋째, 질병판정위 심의회의 구성의 변화가 필요하다. 업무상질병 중 상병이 확인되는 사건은 임상의사를 제외하고 판단하는 구조로 정립해야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나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와 달리 질병판정위에서는 사업주 진술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사업주 의견제출제도가 있고, 업무상질병이 개별실적요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도 질병판정위에서 사업주 진술을 용인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공단 일반정규직은 2014년 5천437명에서 2019년 7천649명으로 2천명 이상 증가했다. 이에 반해 업무상질병 산재 처리기한은 2014년 80.2일에 비해 무려 2배 이상 늘었다. 특진제도 운영 등 전문화나 절차의 복잡화가 아니라 보다 단순하고 쉽고 빠르게 제도가 설계·운영돼야 한다. 그것이 산재보험 법·제도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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