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두나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9. 8. 14. 선고 2018누30190 판결

1. 사건의 개요

2014년 4월26일 현대중공업 조선소 선행도장부에서 샌딩작업 중이던 하청노동자 정아무개씨가 근무 중 에어호스에 목이 감겨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망인의 사망이 근무 중에 발생한 것이고, 사고 정황과 망인의 평소 언행에 비춰 자살로 판단할 근거가 없었음에도 울산동부경찰서는 망인이 자살한 것으로 판단 내리고 내사종결 처리했다. 이후 울산지방경찰청이 재수사했으나 마찬가지로 망인의 사망 원인을 자살로 결론 내렸다. 망인의 배우자인 원고는 2015년 5월29일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지급신청을 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위 수사 결과를 근거로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며 부지급처분을 했다. 원고는 근로복지공단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 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의 부지급 처분이 적법하다고 보고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서울행정법원 2017. 12. 7. 선고 2015구합82563 판결). 그러나 원고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서울고법은 2019년 8월14일 “망인이 샌딩기 리모컨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샌딩기에서 분사된 쇳가루가 눈에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고, 그로 인해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다리를 통해 내려가려다 바닥에 사려 놓은 에어호스에 몸이 감겼고 이후 실족하는 과정에서 호스가 목에 매여 사망한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재해에 해당함에도 이를 달리 판단한 1심 판결은 위법해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위 판결은 피고가 상고하지 않아 확정됐다.

2. 판결의 요지

이 사건 사고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5조1호 소정의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이 사건은 당시 망인의 사망원인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였기 때문에 간접적인 사실관계 등에 의해 업무와 망인의 사망 사이에 업무 기인성을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즉 망인의 사망 원인이 자살이 아니라 업무상 발생한 사고에 의한 것인지 여부가 문제됐다.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망인의 사고 가능성이 추정되지 않고, 망인의 사망원인을 자살로 결론내린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에 오류나 의문점을 발견하기 어렵다면서 근로복지공단의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을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① 망인의 샌딩기 리모컨이 전선 접촉에 의해 의도치 않게 작동할 수 있었던 점 ② 망인이 착용하고 있었던 방진마스크 오른쪽 필터가 훼손되고 망인의 얼굴과 목 부위에 쇳가루가 묻어 있었던 점에 비춰 볼 때 망인이 리모컨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자신의 샌딩기에서 분사되는 쇳가루에 맞았고 이것이 눈에 들어간 것이라고 봤다. 또한 망인은 눈에 들어간 쇳가루 때문에 시야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작업장 밖으로 나가 사다리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외부비계를 통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바닥에 놓인 에어호스가 몸에 감겼고, 그러한 상태에서 사다리 아래로 내려가려던 망인이 실족하면서 몸에 감겨 있던 호스가 위쪽으로 당겨져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3. 이 사건의 의미

대법원은 본 사건과 같이 재해발생 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라도 간접적인 사실관계 등에 의거해 경험법칙상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추론에 의해 업무 기인성을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업무상재해라고 봐야 한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입증책임의 판례 법리를 제시해 왔다(대법원 2006. 9.22. 선고 2006두8341 판결,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7두3077 판결 참조). 본 판결은 목격자 등 망인의 사망 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였지만 간접적인 사실관계 등에 의거해 망인이 업무 중 발생한 사고로 사망했을 개연성을 인정하고 망인의 사망을 업무상재해로 판단했다.

본 판결은 망인의 사망 전 상황에 대한 종합적 판단을 바탕으로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재해로 인정됐지만, 여전히 재해발생 원인을 직접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한 경우 노동자가 소송에서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노동자측에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재해발생 원인에 대한 입증이 쉽지 않은 현실을 고려해 볼 때, 본 사건과 같이 노동자가 업무 중 사망했으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러한 사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해 산재를 주장하는 쪽의 입증책임 정도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업무상재해 인정과 관련해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사정에 관해서는 증명책임에 있어 열악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서울행정법원 2016. 1. 28. 선고 2013구합53677 판결 참조)이라고 판시했고, 대법원도 업무상질병에 대한 산재 인정과 관련한 사안에서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률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군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고 판결해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을 완화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위 판결들에서 설시하고 있듯이,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상 위험을 사업주나 노동자 어느 일방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분담하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 취지를 고려해 볼 때, 본 사건과 같이 직접적인 사인 입증이 어려운 경우 업무상재해를 주장하는 노동자의 입증책임 완화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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