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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문제는 가족비리 이전에 그의 노선

기사승인 2019.09.19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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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조국 법무부 장관 논란이 이제 피곤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 칼럼에서 그의 사모펀드와 자녀 입시비리 문제에 어떤 의견을 더 얹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정쟁의 피로감에도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그가 대표하는 문재인 정부의 노선에 대해서 말이다. 그의 ‘내로남불’은 개인 처신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것이 현 정부의 노선이라고 생각한다. 조 장관이 인사청문회에서 했던 “나는 사회주의자인 동시에 자유주의자”라는 말을 비판하며 이 문제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자유주의는 자유시장 경제를 토대로 그에 적합한 정치·경제 제도를 만드는 사상이다. 모든 인간에게 소유할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시장에서 각자가 소유한 것을 상품으로 거래하면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생산을 최적화하고, 소득을 생산에 대한 기여에 따라 공정하게 분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유의 대상과 범위, 시장 규칙, 자유시민 권리를 정하는 것이 자유주의적 제도들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자유주의가 자유를 온전하게 구현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자유시장은 생산을 최적화하고 극대화하는 힘이 있지만 결국에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가 노동력을 소유한 노동자를 지배하며 생산에 대한 기여를 불공정하게 가져간다. 이런 구조에서는 노동의 결과로서 얻어진 이윤을 인구의 소수일 뿐인 자본가가 취득해 투자와 고용을 결정하는 주인공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본가는 인구 다수인 노동자를 경제적으로 지배한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소수의 자본가가 다수의 노동자를 지배하는 계급 체제를 정당화하는 사상일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는 자유를 계급에 따라 불평등하게 보장한 자유주의의 근본적 한계를 뛰어넘어 보자는 포부였다.

한편 문재인 정부 개혁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 문학적 표현을 냉정한 현실의 언어로 풀어써 보자. 평등한 기회는 자유시장의 기본원리다. 누구나 같은 액수의 돈으로 같은 상품을 구매할 수 있고, 판매할 기회가 보장된다. 또한 경쟁으로 시장에서 구매와 판매를 부단히 반복하면 공정한 가격이 달성된다.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는 손보다 더 공정하다는 것이 경제학 규범이다. 정의는 그리하여 평등한 1원으로, 공정한 시장경쟁을 통해, 기여한 만큼 소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 후생경제학 제1 기본정리라고도 한다. 문재인 정부는 재분배에도 힘을 쏟는다고 하는데, 시장에 진입할 돈이 부족하다면 정부가 재분배로 약간의 조정을 해 주면 시장은 다시 평등·공정·정의를 실현한다. 이것을 후생경제학 제2 기본정리라 부른다.

요컨대 문재인 정부의 개혁 슬로건은 기껏해야 시장주의를 그럴듯한 문학적 표현으로 대체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도대체 문재인 정부의 최측근 실세인 조국이 어떻게 사회주의자일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사회주의가 무엇을 비판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조 장관이 속했던 사노맹의 사회주의는 국유화와 노동자계급의 장기집권, 그리고 이를 추동하는 주인공으로서 전위당을 핵심 내용으로 삼았다. 전위당은 노동자계급에게서 집권을 수탁받아 권력을 행사한다. 국유화된 생산수단 소유자는 실질적으로 전위당이 된다. 전위당이 권력을 수탁받아 장기집권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자유주의 제도들을 장기간에 걸쳐 일관되게 변화시키고, 노동자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시장의 관습들을 점차적으로 바꿔 내야 하기 때문이다. 장기 이행을 일관되게 추진하려면 지식과 물리력을 갖춘 지도자로서 전위당이 필요하다.

국유화 경제의 전위당은 노동자 계급에게 결국 민주주의를 넘겨주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이 수천만 개의 생산물에 필요한 수천만 개의 자원을 할당하는 능력과 정보를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권력의 수탁은 영구화된다. 소련은 끝까지 전위당 독재를 유지했다. 전위당 관료들이 전국단일기업의 사업주이자 관리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유시장의 자본가보다 결과적으로 무능한 자본가였을 뿐이었다. 소련의 몰락이 이를 증명한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개혁은 원래는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이었다. 박근혜 게이트는 검찰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박근혜 청와대가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을 수족 부리듯 다뤘고, 이를 견제할 의회가 친박·진박 논쟁이나 하면서 무력화된 것에서 비롯했다. 박근혜는 자유시장 제도로서 갈등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포섭하는 정치제도 개혁에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내각보다 청와대 수석·보좌관이 실세로 역할하고, 심지어 미디어 선동까지 한다. 의회는 청와대가 정치 갈등을 키워 오히려 박근혜 때보다 더 무력화됐다. 문재인 정부는 제도개혁을 위한 이해관계자들 포섭보다는 적폐청산 이름으로 상대방을 박멸하려는 정치를 3년간 지속 중이다. 이 과정에서 검찰 권력은 더욱 커졌다. 포섭의 자유주의 정치가 사법적 처벌로 대체된 탓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핵심에 조국 전 민정수석이 있었다.

그러면 조국의 자유주의는 무엇일까. 그의 정치는 자유주의보단 오히려 실패한 '국유화-전위당' 노선과 흡사해 보인다. 청와대가 ‘적폐청산’ 강령을 가진 전위당이다. 이 당은 철권으로 대중을 통제하지는 않지만, 퍼포먼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선동을 통해 반대세력과 비판세력을 축출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결과를 얻는다. 또한 시민에게 권력을 넘겨줄 준비도 하지 않는다. 시민주권 대의기관인 의회는 계속 찬밥이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해 말 더불어민주당 20년 장기 집권론을 주장했는데, 그의 이야기와 조국의 정치를 합하면, 일종의 장기적 적폐청산 이행노선이 된다. 자유주의에 미달해 실패한 국유화-전위당 노선이 이렇게 겉모습만 달리해 살아난다.

조국 장관의 사회주의는 허무하고, 그가 말하는 자유주의는 내용이 없다. 그래서 평가의 이론이나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면 옳고 남이 하면 틀린, 즉 옳고 그름의 기준은 자신이 된다. 물론 이는 현 청와대 전체가 공유하는 바이기도 하다. 청와대와 지지자들은 조국 논란을 검찰과의 권력게임 문제로 몰아갈 일이 아니다. 자신의 노선에 대한 냉철한 평가로 이어 가야 한다. 그래야 정권도, 국민도 산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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