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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지나간 후에

기사승인 2019.09.20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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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지명 철회든 임명이든, 어느 정도 일단락되지 않을까 싶었던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다름 아닌 새로 임명된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이야기다. 한일 갈등도, 선거제도 개편도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삼켜 버렸던 약 한 달 동안 많은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꼈다. 강남좌파를 자처하며 사회진보를 위한 활동을 많이 해 오던 새로운 장관 후보자도 결국 다른 기득권과 다를 수 없다는 실망감과 함께, 이를 비판할 자격조차 없는 보수 정치인들이 옳다구나 하며 달려드는 것이 보기 썩 좋을 리가 없다.

희한한 풍경도 등장했다. 자유한국당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든 피켓에는 “청년의 분노, 조국 OUT”이라고 적혀 있었다. 최경환·권성동·김성태 등 주요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공공부문 채용비리에 연루되고서도 사과는커녕 정치공세로 폄하하고, 구직활동지원금 50만원에 ‘편안한 삶’을 누리면 취업 못할 거라고 저주하던 원내대표, 스펙에 연연하지 마라며 거짓말까지 하는 당대표가 있는 정당이 그야말로 ‘청년팔이’를 제대로 하고 있다. 희한한 풍경은 그 반대편에도 있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교육감이나, 특정 정치세력이 많다느니 마스크를 썼느니 비판자를 무턱대고 반대 진영으로 몰아세우는 말까지 넘실댔다. 이러한 논란과 갈등을 감수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것도 ‘개혁’이라는 단어로 포장될 뿐,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검찰과의 파워게임인가도 싶다. 근 한 달간 청년들이 경험한 냉소는 촛불과 탄핵의 경험을 기억 저편으로 보내 버렸다.

블랙홀처럼 빨아들여서 뒤섞여 버린 수많은 이슈가 흘러가는 사이에, 이번 사태는 단순한 ‘수저계급론’을 드러낸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 발언권의 불평등을 너무나도 분명히 드러냈다. 언제 이렇게 청년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귀 기울였던 적이 있었을까? 청년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든 상시적으로 과소대표되는 상황에서 청년 목소리가 주목받는 것은, 늘 민심이반이라는 정치적 맥락으로 동원되는 순간뿐이었다. 더욱 극명히 드러난 것은 청년세대 내의 정치적 불평등이다. 어떤 부류의 청년들은 단순히 집회를 열자는 글을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것만으로 언론에서 기사로 다뤄지지만, 어떤 청년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일터에서 사고를 당하고서야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더 불행해야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상으로 드러난 정치적 불평등은 이미 숱하게 반복돼 기시감마저 든다. ‘김예슬 선언’이나 ‘안녕들 하십니까’에서 그랬듯이 대학에서의 정치적 움직임은 항상 학벌의 제약에 놓여 있고, 모두 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사회에 의해 학벌로 구획 지어진 정치적 발언의 자격은 학생증과 졸업증명서 같은 자기 검열과 ‘탈정치’라는 강박으로 이어지고, 하물며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들은 그런 검열된 발언권조차 갖지 못한다.

공과 사를 넘나들며 이뤄지는 ‘스펙 품앗이’는 대다수 청년들에게 기상천외한 입시 이야기다. 그조차 장관 후보자가 아닌 이상에야 드러날 일 없는 사회 기득권의 일면이다. 단순히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로서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사회적 관계망에서의 격차였다.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현격하게 생기는 기회의 격차라고 할 수 있다. 모두에게 공정의 사다리가 주어져도 결코 지금 드러난 사회적 갈등이 해소될 리 없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 단어는 공정과 정의지만, 그 본질은 아무리 공정하고 정의로워도 해결될 리 없는 불평등의 문제다. 경제적 불평등만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서 현 정부가 근본적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이럴 때마다 지금의 청년세대가 공정성에 예민하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결과일 뿐 문제의 원인이 아니다. 조국 논란 직후 입시제도 전반을 재검토해 달라는 대통령의 말은 대학 입시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약 20%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대물림되는 다중적인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계층 간의 깊어지는 단절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 이러한 논란을 감수하면서 임명을 강행한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정부가 청년들에게 내놓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김영민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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