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도시가스와 가스 안전점검 노동자들이 탄력적 2인1조 근무와 성범죄 위험가구 정보공유에 합의한 가운데 이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 사회복지사·재가요양보호사·수도검침원 같은 가구방문 노동자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남성만 있는 집'은 두 명이 점검, 성범죄 위험가구 정보공유

22일 노동계에 따르면 공공운수노조 울산본부·경동도시가스고객서비스센터분회와 경동도시가스(위탁사)·경동강동고객서비스주식회사(회사)가 지난 20일 이 같은 내용의 '안전한 도시가스사용시설 점검을 위한 합의서'를 도출했다.

분회는 올해 4월 원룸에 도시가스 안전점검을 갔다가 남성에게 감금·추행을 당한 점검원이 한 달여 뒤인 5월17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건을 계기로 같은달 20일부터 울산시청 본관 앞에서 안전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농성을 했다. 최근 세 명의 조합원이 울산시의회 옥상에서 점거농성을 하다 연행된 후 열린 노사교섭에서 '탄력적 2인1조 근무'를 포함한 합의문이 나왔다.

탄력적 2인1조 근무는 여성 점검원 두 명이 동행하면서 안전점검 대상 가구에 따라 탄력적으로 1인 점검이나 2인 점검을 하는 방식을 말한다. 남성만 있는 가구에는 여성 점검원 두 명이 들어가고, 여성만 있는 집이거나 남성과 여성 가족 구성원 또는 미성년가족이 있는 집에는 여성 점검원 혼자 들어가는 식이다.

한 명이 점검할 때 다른 한 명은 다른 가구 구성원을 확인한다. 여성만 있다면 업무를 진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기다렸다가 두 명이 함께 점검한다.

회사는 점검원들에게 '성범죄 및 특별관리세대' 정보를 제공한다. 특별관리세대란 △성범죄 발생 세대·여성가족부 등록 성범죄자 세대 △안전점검원들의 체크리스트 점검을 통해 추가된 세대다.

양측은 실효성 있는 감정노동자 보호 매뉴얼 마련·시행에도 합의했다. 기존에 회사가 점검원들에게 배포했던 '성희롱 대책 매뉴얼'에는 "고객이 신체적 접촉을 시도할 경우 신속히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함을 알리고 자리를 피한다"거나 "음담패설을 하면 당황하지 말고 못 들은 척 담담하게 업무적으로 말을 돌린다"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대처법이 나열돼 있다.

1인당 1천200건씩 할당한 뒤 97% 이상 점검하지 못하면 1%당 임금 5만원을 삭감하던 건수 성과제는 폐기된다. 점검원들이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저녁 늦게까지 일하다 거주자들의 폭언·폭행·성추행 같은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잦았다. 대신 노사는 2인1조 기준 월 2천60건을 기준업무량으로 삼았다. 이장우 노조 울산본부장은 "업무량을 줄이고, 두 명씩 짝을 지어 이동하며 상황에 맞게 1인 점검이나 2인 점검을 하게 됐다"며 "노동자들이 보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가구방문 노동자들 "2인1조 근무 법에 명시해 달라"

이번 합의를 계기로 가구방문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6월 국회에서 윤소하 정의당 의원과 노동이당당한나라본부, 민주노총·국회 저출산극복포럼 주최로 열린 '가구방문 노동자 인권침해 증언대회'에 참석한 정신건강복지센터 사회복지사·재가요양보호사·수도검침원들은 "가구방문 노동자들의 2인1조 근무를 법으로 강제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10월 산업안전보건법 26조의2(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가 시행되자 고용노동부는 '감정노동 보호 가이드북'을 냈다. 노동부는 가이드북에서 사업장 특성에 맞는 고객응대업무 매뉴얼을 마련하도록 했는데, 방문서비스는 2인1조 수행을 권고했다. 법적인 강제가 아닌 인력충원이 필요한 '돈 드는 권고'에 그쳐 현장에 적용되지 못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전체 가구방문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어떤 인권침해를 겪고 있는지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윤소하 의원실 관계자는 "인권위에 다양한 업종에 흩어져 있는 가구방문 노동자들이 겪는 인권상황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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