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대는 매년 3월과 9월 조교 재임용 심사를 한다. 올해로 13년차인 강원권 K대 13년차 조교 ㄱ씨는 매년 7월이면 재임용 심사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한다. 학과 교수 5명이 각각 평가한다.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재임용에서 탈락한다. 평가 점수는 학과장을 거쳐 단과대 학장까지 올라간다. 임용 가부는 재임용심사위원회가 결정한다. ㄱ씨는 "10년 넘게 재임용에서 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조교 정원이 1명인 학과에서는 이달 초 방학이 끝나자 2명의 조교가 출근하는 일이 벌어졌다. 학과장이 바뀌면서 새로운 조교를 추천해 임용했는데 기존 조교가 이 사실을 모르고 출근한 것이다. 소청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 본인이 해고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카카오톡 제발 없어졌으면…"
주말·새벽에 개인업무 지시하는 교수


25일 한국노총은 국공립대 조교 1천445명 대상 노동실태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실태조사는 5월7일부터 6월7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응답자 근무기간은 5년 미만이 60.4%를 차지했다. 10년 이상 근무했다는 답변도 19.9%나 됐다. 조교 10명 중 9명이 "고용이 안정된다면 조교를 직업으로 계속하고 싶다"고 답했다.

1년마다 재임용 심사를 받는 조교노동자는 심각한 고용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호남권 B대 5년차 조교는 "교수들의 의견이 재임용에 100% 반영되기 때문에 평소에 교수들의 기분이나 말투·행동에 모든 것을 맞춰야 하고 부당한 업무지시라 해도 거절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영남권 F대 2년차 조교는 "주말이든 저녁이든 새벽이든 휴가 때든 가리지 않고 카카오톡으로 업무지시가 내려온다"며 "메신저 프로그램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조교노동자들은 직무수행에 가장 큰 어려움으로 과중한 업무(50.7%)를 꼽았다. 교수의 개인적 업무지시(18.5%)는 2위를 차지했다. 4명 중 1명(24.4%)이 "채용·회계·(성)폭력·갑질 같은 비위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국공립대 조교 70%가 학과에서 홀로 근무하는 1인 노동자다. 혼자서 학과 행정업무를 모두 처리하기 때문에 휴가를 사용하기 힘들다. 강원권 B대 조교는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휴가를 썼는데 학과 사무실 전화를 개인 휴대전화로 수신하도록 설정해 놓고 여행 내내 업무를 처리했다. 충청권 J대 조교는 "퇴근 후나 주말에 교수 연락을 몇 번 놓쳤더니 '감히 조교가 교수 전화를 안 받냐. 조교 자질이 없다'며 그만두라고 종용했다"며 "업무시간 외 사적인 업무지시를 당연시하는 문화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 조교 "결혼과 함께 사직 권고받아"

여성조교 노동권은 사각지대에 있다. 모성보호는커녕 결혼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하는 구시대적인 조직문화가 존재한다. 영남권 O대학 10년차 조교는 "출산휴가 3개월은 허용하지만 육아휴직 1년은 허용하지 않아 여성조교는 결혼을 하면 암묵적인 룰에 의해 스스로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호남권 M대 6년차 조교는 "여성조교가 결혼하면 사직을 권고한다"고 응답했다. 충청권 N대 5년차 조교는 "출산하면 재임용에 탈락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다정 국공립대조교노조 사무국장은 "조교를 직업으로 보지 않고 하대하는 대학 풍토가 있다"며 "조교노동자의 70%를 차지하는 여성조교는 성차별에도 시달린다"고 비판했다. 이 국장은 "여성조교는 언어(성)폭력과 불필요한 신체접촉, 회식자리에서의 부적절한 행위로 직업조교로서 자존감과 직업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당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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