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공단이 전산시스템 보안 강화와 이용자 편의를 이유로 전국 20개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일하는 직원과 내방객의 생체정보 수집을 추진해 논란에 휩싸였다.

민감한 생체정보의 외부 유출과 오·남용 우려와 더불어 센터 직원의 생체정보를 공단이 편의적 통제수단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공단이 생체정보 수집·이용 동의를 사실상 강제하면서 센터들의 집단거부 움직임도 감지된다. 공단은 각 지역 산업보건 전문기관에 근로자건강센터 운영을 맡기고 있다.

"전산시스템 보안 강화" 직원·이용자 지정맥 인증 추진

6일 공단과 각 지역 근로자건강센터의 설명을 종합하면 공단은 최근 16개 근로자건강센터 운영기관장과 20개 근로자건강센터장 앞으로 '근로자건강센터(분소) 지정맥 인증시스템 도입 및 협조사항 알림' 공문을 내려보냈다.

공단은 "근로자건강센터 통합 전산시스템의 보안성 강화 및 내방 이용자 편의 증대를 위해 개발된 지정맥 인증시스템이 도입된다"며 시스템 설치 협조를 구했다.

공단이 수집하려는 생체정보는 오른손 검지 정맥이다. 손가락 정맥 모양과 움직임을 읽어 신분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직원들의 센터 전산시스템 로그인과 로그접속을 확인하고, 이용자들의 센터 예약접수·건강상담·이용확인·이용자 만족도 조사를 하겠다는 게 공단 설명이다.

공단은 센터 직원에게 이달 11일까지 '생체정보 수집 및 이용동의서'에 서명해 공단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공단은 "생체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동의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면서도 "거부할 경우 근로자건강센터 전산시스템 이용이 제한된다"고 못 박았다.

센터 이용자의 경우 올해 12월까지 지정맥 인증과 수동접수 방식을 병행하되, 내년 1월1일부터는 반드시 지정맥 인증시스템에 등록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용자용 '생체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서'에는 생체정보 수집·이용 동의를 거부하면 "근로자건강센터의 건강상담 서비스 제공이 제한될 수 있다"고 공지돼 있다.

공단 관계자는 "기존에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로만 통합 전산시스템에 로그인할 수 있는데, 남에게 부탁해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전산시스템에 들어 있는 개인정보를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보안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근로자건강센터 특정감사에서 개인정보 보안 관련한 지적사항이 있어 신경을 쓰자는 차원에서 추진됐다"며 "올해 1월부터 세 차례 (센터에) 설명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용자 대상 지정맥 등록에 대해서는 "이용자들도 한 번 지정맥 등록을 해 놓으면 접수부터 상담까지 편리하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근로자건강센터 "감시·통제용" 반발

올해 초부터 지정맥 인증시스템 도입을 추진했다는 공단 설명과 달리 공문을 받은 센터들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공단이 센터에 충분한 설명이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민감한 생체정보 수집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A근로자건강센터 관계자는 "갑작스럽다"며 "개인정보 보호 취지라면 기존 시스템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지 센터에 의견을 묻거나 논의하는 시간을 갖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센터에 대한 감시·통제를 강화하려는 취지로 해석하는 시각도 많았다. B근로자건강센터 관계자는 "공단이 전산시스템 보안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센터 직원들의 근태 등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C근로자건강센터 관계자는 "직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 같다"며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도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이름·사업장으로 검색해도 상담이력이나 건강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데 굳이 생체정보까지 입력할 이유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D근로자건강센터 관계자는 "요즘은 주민등록번호도 전부 수집하지 않는데, 갑자기 생체정보를 수집하겠다고 하면 누가 흔쾌히 동의하겠냐"며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센터 이용률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근로자건강센터 관계자는 "등록된 생체정보 보안은 확실한 거냐"고 꼬집었다.

이들 센터 관계자들은 정보수집에 동의하지 않으면 전산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거나 건강상담 서비스 이용에 제한을 두는 것은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개인정보 보호법에 규정된 개인정보 주체로서 생체정보 제공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고 대체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부 근로자건강센터는 공단에 이 같은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측은 "동의를 못하겠다고 하면 다른 보안강화 방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많은 예산이 수반된다"며 난감해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관공서·학교·직장에서 일괄적인 지문·지정맥 등록은 인권침해라며 개선을 권고한 적이 있다"며 "보안을 강화하고 편의성을 높이는 목적이라면 지정맥 인식보다 덜 인권침해적인 수단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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