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안전에서 일하는 김아무개(33) 대리는 요즘 만삭의 아내를 볼 때마다 걱정에 휩싸인다. 입사 9년차인데, 월급은 세금을 제외하고 250만원 남짓이다. 하루 평균 3시간 정도 연장근로를 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다. 연장근로수당을 제외하면 월급은 사실상 최저임금 수준이다. 혼자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에 벅찬 액수다.

한국금융안전은 국내 현금수송 업계 1위 회사다. 김 대리는 9일 “일을 하며 은행원들과 자주 마주치는데 그들이 받는 월급과 비교해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며 “회사를 훨씬 오래 다닌 선배들과 제 월급이 불과 5만원밖에 차이가 안 나 앞날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오래 일해도 임금인상 없거나 낮아"=<매일노동뉴스>가 이날 금융노조 의뢰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진행한 ‘현금수송 하도급업체의 임금실태와 근로조건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입수해 살펴봤다. 보고서는 지난달 작성됐다. 국내 현금수송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실태가 조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조 금융안전지부(위원장 이동훈) 조합원 4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담겼다. 평균연령은 40.96세, 근속기간 평균은 13.4년이다.

연간 3천만원 초반대의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가 참여자에게 연간 임금총액에 대한 인식을 물었더니 “3천만원에서 3천500만원 사이”라는 응답이 32.4%로 가장 많았다. 이어 △3천500만~4천만원(29.7%) △2천500만~3천만원(21.5%) △4천만~4천500만원(9.1%) 순으로 조사됐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0.31시간이었다.

“임금수준을 금융기관(원청) 종사자들과 비교할 때 어떠하다고 생각하나”라고 묻자 90.3%가 “낮다”고 답했다. “근속에 따른 임금인상이 없거나 너무 낮다”는 의견에 97.3%가 동의했다.

현금수송 업계에 저임금 구조가 뿌린내린 것은 입찰 방식 때문이다.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최근 주요 은행 현금수송·물류업무 입찰공고 내용을 소개했다. 신한은행은 2018년 ‘통합물류 수송대행업체 선정’ 입찰에서 최저가 낙찰을 명시했다. KEB하나은행은 올해 ‘물류배송 및 문서수발업무 용역업체 선정 입찰공고’에서 총점의 70%를 가격평가에 배정했다. 지부 조합원들에게 제도개선 방안을 묻자 "저가 낙찰제 폐지와 표준용역비 산정기준 마련"이라는 답변이 36.4%로 가장 많았다.

◇"금융당국이 표준용역비 산정해야"=연구에 참여한 이종수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화평)는 “대다수 은행이 현금수송업무 위탁을 위한 낙찰자 선정 과정에서 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하고 있다”며 “부실한 용역계약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금융기관 업무위탁 등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는 만큼 권한을 갖는 기관이 앞장서서 표준업무위탁계약서와 표준노임단가 등을 통해 위법·부당한 용역계약이 체결되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각 은행 현금수송업무 종사자 직접고용 △금융기관 공동 '현금수송을 포함한 특수경비 전문회사' 설립 △금융위원회 '금융기관의 현금수송업무 위탁에 관한 규정' 제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동훈 위원장은 “은행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고려 없이 최저가 낙찰제만 고수하고 있어 현금수송 업계 노동자들이 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은행법이 현금수송사무를 금융사고 가능성이 높은 업무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제도적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현금수송노조협의회는 최근 한국금융안전과 브링스코리아 대표에게 노조 위원장이 포함된 4자 회동을 제안했다. 협의회는 금융안전지부와 브링스코리아노조가 지난해 4월 만든 조직이다. 브링스코리아는 현금수송 업계 2위 회사다. 조승원 브링스코리아노조 위원장은 “은행이 고수하는 최저가 낙찰제가 회사와 직원은 물론 업계 전체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하에 1·2위 업체 노사 대표가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회동을 제안했다”며 “사측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