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이아무개(30)씨는 공공기관인 한국철도기술연구원에서 2016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2년 넘게 파견직으로 일했다. 2년이 지났기 때문에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지난해 9월 연구원에 직접고용돼야 했다.

마침 연구원은 정부 정책에 맞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했다. 이씨를 비롯한 파견노동자들은 정규직이 되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연구원은 같은해 11월부터 이씨와 동료들을 8개월짜리 기간제로 고용했다. 결국 올해 6월 말 계약을 해지당했다.

이씨는 동료 19명과 함께 계약직으로 고용되기 직전인 지난해 10월 연구원을 파견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소했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고용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해 달라”며 소송도 했다.

노동부 안양지청은 올해 7월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을 파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런데 노동부는 연구원이 파견법에서 허용한 2년을 넘겨 파견을 사용한 혐의만 인정했다. 파견법상 고용의무는 위반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8개월 기간제도 직접고용이기 때문에 법 위반이 아니라는 황당한 얘기다.

기간제 고용 허용하는 노동부 행정해석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불법파견시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도록 한 파견법 조항을 '기간을 정하지 않은 고용'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파견법 6조의2(고용의무)에 따르면 파견대상이 아닌 업무에 파견을 사용하거나 2년 이상 파견 노동자를 사용하면 직접고용해야 한다. 직접고용이 기간제까지 포함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기계약인지에 대해서는 명시한 것이 없다.

노동부는 이를 이유로 "계약직 채용이 가능하다"는 행정해석을 하고 있다. 노동부는 파견법 질의회시집에서 “2년을 초과해 파견근로자를 계속 고용하는 경우 노사 당사자 간의 합의로 무기계약 또는 기간제 근로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기간을 단기간으로 설정하는 등 사용사업주가 파견법에 의한 직접고용의무를 단순히 면하기 위한 절차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면 직접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직접고용의무를 이행했다고 판단한 노동부 안양지청도 이런 행정해석을 따랐다.

계약해지된 이씨와 그의 동료들은 "기간제 채용에 합의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회사가 처음에 자회사 고용을 제안했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직접고용이 이뤄질 때까지 당분간 기간제로 일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얘기했더니 발령 전날 퇴근하기 30분 전에 기간제 전환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대법원 “고용의제·고용의무는 같은 목적”

핵심 쟁점은 파견법 취지를 어떻게 보느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8년 9월 파견근로를 2년을 초과해 사용했을 때 직접고용한 것으로 간주한 옛 파견법 조항과 관련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기한의 정함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씨는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전원합의체 판례를 근거로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직접고용을 요구했다. 반면에 연구원측은 “해당 판례는 옛 파견법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현행 파견법은 고용간주(고용의제)가 아닌 고용의무를 명시하고 있고, 계약기간에 대한 언급이 없어 기간제로 고용할 수 있다는 논리다.

연구원측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법원은 2015년 11월 선고한 판결에서 옛 파견법과 현행 파견법 취지가 같다고 봤다. 재판부는 “직접고용간주 규정이나 직접고용의무 규정은 사용사업주가 파견기간 제한을 위반해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 근로자파견의 상용화·장기화를 방지하면서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200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직접고용간주 규정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로 간주한다’는 결론을 낸 주된 취지는 고용안정 도모”라고 설명했다.

파견법의 직접고용의무 규정이 만들어지기까지 논의 과정을 봐도 직접고용의무 입법취지는 무기계약 고용으로 무게가 쏠린다. 현행 파견법은 2006년 11월 국회를 통과해 이듬해 7월부터 시행됐다.

정부는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입법'을 추진하면서 직접고용의무제를 신설한 파견법 개정안을 2004년 11월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정부는 직접고용간주 규정 대신 직접고용의무 규정을 넣은 것에 대해 “직접고용간주 규정은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을 이행하지 않을 때 제재수단이 없고, 파견근로자가 직접고용될 때 고용조건이 어떻게 되는지 불명확하다”고 주장했다.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의무를 지우면 불이행시 과태료를 부과해 강제성을 높일 수 있다는 말이다. 사용사업주 노동자 중 파견노동자와 같거나 유사한 일을 하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맞추도록 해서 파견노동자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러면서 노동부는 “직접고용간주 규정은 당사자 합의 없이 근로관계가 강제돼 사적자치 원칙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현행법 입법취지는 계약기간 등 고용조건을 고용계약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법적 고려에 기초해 있다”며 “고용의무를 이행할 때 적절한 기간을 정해 고용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견법 입법취지에 따라 파견노동자를 직접고용할 때 기간제로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당시 법안 논의 과정을 들여다보자.

2005년 논의 때 “정규직 중심 직접고용의무” 공감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005년 12월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파견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고용의무제를 도입한 정부 법안에 대해 당시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과 일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우려를 표했다. 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용사업주가 과태료만 내고 직접고용을 이행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기업이 파견노동자를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직접고용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당시 노동부 관계자들은 "정규직 중심 직접고용"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정부는 직접고용되는 파견노동자 근로조건에 대해 "파견근로자와 동종 또는 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있는 경우 그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한 근로조건에 의할 것"이라고 법안에 명시했다. 이 조문은 현행법에 그대로 반영됐다. 파견법(6조의2 3항)은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있는 경우 : 해당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에 따를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2005년 12월8일 열린 법안심사소위에서 노동부 비정규직대책팀장은 해당 조문의 취지를 묻는 열린우리당 의원 질문에 “거기에 비교되는 근로자가 정규직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당연히 한다”고 답했다. 그는 “다수의 경우에는 분명히 정직원들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라며 “유감스럽게도 정직원이 없고 계약직만 있다면 계약직이 적용되는 취업규칙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을 보면 올해 2분기 기준으로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정규직 현원은 325.25명, 기간제는 87명이다. 전체 직원 중 기간제는 21.1%에 불과하다. 파견법 입법취지를 감안하면 이씨와 동료들은 직접고용될 때 직원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규직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는 "연구관리 파견직으로 일할 때 연구지원팀에서 정규직과 같은 일을 했다"고 증언했다. 정부기관에 제출한 연구비 사용실적보고서는 정규직도 작성하는 서류다.

이씨는 “정규직과 같은 팀원으로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명함에는 연구원 행정직종 정규직 중 최하위 직급인 행정원이라고 찍혀 있었다”며 “나와 동료들은 기간제가 아닌 행정원으로 고용돼야 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은 “불법파견 노동자를 직접고용할 때 동종·유사 업무가 없더라도 사용사업주 취업규칙상 가장 근로조건이 낮은 근로자와 같은 근로조건을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노동부 관계자도 “입법취지를 고려한다면 무기계약으로 고용하는 것이 맞고, 최근 들어 가급적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하라고 사업주들에게 권고하고 있다”면서도 “법 규정에 기간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기간제로 고용했다고 해서 과태료를 부과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권두섭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대목은 파견법의 직접고용의무 규정 취지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이라는 것”이라며 “1년마다 계약하는 파견노동자를 기간제로 고용하면 고용안정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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