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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이후, 비이성적 열광 뒤에 오는 공황

기사승인 2019.10.17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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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장관 사퇴로 두 달 넘게 이어진 조국 대란이 수습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사태는 놀라울 정도로 금융시장에서 거품이 일어나는 과정과 비슷했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는 금융시장 거품을 ‘비이성적 열광(Irrational Exuberance)’으로 설명한다. 실러의 이론에 빗대 조국 사태를 분석해 보겠다.

실러에 따르면 거품이 크게 발생하는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 실물경제 변화에 대한 과도한 기대다. 혁신과 성장이 영원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그 미래를 현재 가격에 투영하는 자산의 가격은 몇 배로 더 상승한다. 주식과 부동산이 바로 그런 자산들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장밋빛 미래가 제시되기 때문에 자산가격 거품에 대한 경고가 나와도 거품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가격으로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다.

둘째, 언론의 영향이다. 경제기사들은 현상을 냉철하게 분석하기보다는 가격 상승 시기에 오히려 상승을 부추기는 설명을 제시한다. 인터넷 미디어 발전으로 이런 기사들은 양적으로 많아졌고, 실시간으로 보도되면서 이전보다 영향력도 커졌다.

셋째, 심리적 이유다. 투자자들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모호한 상황에서는 심리적으로 익숙한 것에 의지해 결정한다. 그런데 익숙한 것은 경제이론과 수량적 분석보다는 시장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밀접하게 모여 있는 무리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확증편향을 일으키면서, 묻지마 투자로 이어진다. 그리고 앞의 두 가지 요인은 이런 심리적 확증 속에서 증폭되며 “거품은 없다!”는 확신, 심지어 경고가 있어도 “무리를 믿고 투자하면 된다!”는 비이성적 열광으로 발전한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실러가 분석한 금융 거품이 조국 사태와 놀랄 만큼 닮았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2019년 대한민국에서 비이성적 열광은 서울 서초동 집회를 주도한 조국 지지자와 이를 직간접적으로 응원한 개혁세력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첫째, 검찰개혁과 조국 장관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있었다. 수사와 기소를 공정하게 만드는 검찰개혁은 여야 할 것 없이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나라를 이렇게까지 혼란으로 이끌면서 국력을 쏟아야 할 사안은 아니다. 더구나 그것을 반드시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조국 장관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권 세력은 조국 비판을 진영 간 정치공세 프레임으로 만들었고, 심지어 검찰 수사는 아예 쿠데타라고 규정하면서 조국 사수가 한국 사회 개혁의 유일무이한 과제인 것처럼 과장했다.

사실 집권 초만 해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은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의 하위범주였다. 생각해 보라. 막강한 대통령이 검찰을 이용한 것이 문제였지, 언제 검찰이 대통령을 협박한 것이 문제였던가. 박근혜 게이트는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검찰을 수족 부리듯 사용한 부패비리였다.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미국이나 프랑스에 비해서도 월등하게 권력이 막강하다. 검찰을 포함한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은 대통령의 ‘선의’에 기대야만 한다. 심지어 검찰개혁 핵심으로 제시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검찰보다도 오히려 대통령과 거리가 가깝다. 검찰개혁은 권력개혁의 몸통이 아니며, 심지어 그 방향 역시 여전히 논란거리다.

금융시장에서 장밋빛 실물경제 전망이 쏟아지면 부실채권 가격까지 거품이 일며 상승한다. 2000년대 초반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만든 파생상품들이 바로 그랬다. 정치권의 조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찰개혁을 엄청난 개혁으로 포장한 뒤 이 개혁을 조국 장관의 현재가치에 투영한 것이 조국 논란을 만들었다. 하지만 검찰개혁도 그렇거니와 조국 장관에 대한 기대 역시 근거는 없는 것이다. 그는 이중잣대의 삶을 살았고, 민정수석 시절 성과도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둘째, 언론이 검찰개혁의 타당성은 분석하지 않고 조국 개인에만 집착한 영향이 있었다. 조국 논란이 이어지는 동안 언론에서는 검찰개혁의 타당성 논쟁이 사라졌다. 오직 조국 한 명에 기사가 집중됐다. 조국을 악마화한 보수언론도 문제였지만, 조국의 내로남불을 똑같은 내로남불 논리로 옹호한 개혁진영 미디어들도 문제였다. 개혁진영의 대표 중앙지인 한겨레신문은 조국 장관 비판 칼럼을 싣지 않아 내분이 일었다. 유튜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시민의 알릴레오 같은 유사언론들은 분석 대신 진영 결집을 위해 선동에 나섰다. 냉철한 분석 대신 진영을 정당화하는 기사들이 넘쳐나면서 정치적 거품이 커졌다. 마치 부동산 경기를 두고 기사가 쏟아지면, 전망이 뭐가 됐든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셋째, “조국이 검찰개혁”이라는 진영 심리가 극대화됐다. 조국 지지자들은 도덕적 부패에 아랑곳 않고 “조국 사수”라는 구호로 진영 내부의 심리적 동질성을 확보했다. 참여연대나 민변 같은 시민단체들도 조국을 인정하는 것이 검찰개혁 반대 세력을 누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치적으로 모호한 상황 속에서 개혁세력의 익숙한 논리인 반보수 진영논리가 강화됐다. 조국 지지자들은 소셜미디어로 이런 논리를 전파했고, 심지어 조국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괴롭혔다. 집회 인원도 부풀려졌다. 검찰개혁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미디어의 진영 정당화가 반보수 논리의 확증편향으로 증폭되며 비이성적 열광이 나타났다. 서초동 집회가 그 상징이었다.

비이성적 열광 뒤에는 반드시 공황이 도래한다. 시장에서는 가격이 붕괴하는 것이 공황이듯, 정치에서는 진보적·도덕적 가치가 붕괴하는 것이 공황이다. 공황은 이미 도래했다. 되돌릴 수는 없어 보인다. 필요한 것은 이 시간을 짧게 만들기 위한 변화일 것이다. 금융적 공황에는 투기를 규제하는 제도개혁이 도입된다. 정치적 공황에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세력이 낡은 세력들을 교체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럽에서는 이 역할을 우익 포퓰리스트들이 했다. 한국에서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태극기 부대가 진화했다는 평가가 있다. 한국 사회는 퇴보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것 같다. 개혁-보수의 낡은 대립을 노동자운동이 대체할 수 있도록 분발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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