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2016년 5월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청년노동자 김군이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달려오는 열차를 피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2018년 12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청년노동자 김용균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죽음을 맞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곁에서 위험을 알려 주거나 도와줄 동료 없이 홀로 일하다가 비극을 맞았다는 것, 또 둘 다 사내하청 노동자였다는 점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5일 간접고용 노동자 생명과 안전, 노동인권 보장을 위해 △위험의 외주화 개선 △위장도급(불법파견) 근절 △사내하청 노동자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을 하라고 고용노동부에 권고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간접고용 문제 심각=인권위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증가뿐 아니라 사내하청·파견 등 외주화가 전 산업으로 확산했다”며 “직접고용·정규직 일자리 축소와 노동자 생명·안전이 위협받는 위험업무 외주화, 노동기본권 제약, 노동조건 악화 등 다양한 노동문제가 양산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산업재해 사망자 다수가 간접고용 노동자라는 점을 주목했다. 인권위는 “노동부에 따르면 건설·조선업종 산재 사망자 중 하청노동자 사망비율이 90%에 달한다”며 “최근 5년간 5개 발전회사 산재 사망자 20명 전원이 사내하청 노동자였다”고 비판했다.

올해 1월15일 공포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내년 1월16일 시행된다. 김용균법으로 불린다. 하지만 전부개정안은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인권위도 전부개정안을 “위험의 외주화 문제의 근본적 개선에는 한계가 많다”고 평가했다.

인권위가 지난해 8~10월 실시한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간접고용 노동자가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위험업무에 내몰리는 사실이 드러났다.<본지 2019년 1월17일자 15면 ‘인권위 “간접고용 노동자 차별·위험에 처해”’참조>

◇간접고용 문제 해법 ‘3종 세트’ 권고=인권위는 무엇보다 위험의 외주화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에서 규정한 도급금지업무를 추가로 확대하고, 생명·안전업무를 구체화하는 한편 원청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고 봤다. 인권위는 “도급금지업무 범위를 화학물질 중심으로 한정한 것은 우리 산재 현실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도급이 금지되는 유해·위험작업 범위를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이어 “생명·안전업무를 구체화하고 직접고용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며 “법 위반에 대한 엄정한 처벌 등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라”고 강조했다.

위장도급 근절을 위한 개선방안 마련도 주문했다. 오랫동안 사내하청에 대해 위장도급 논란이 이어지는 것은 그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인권위는 “원청의 실질적 지휘·명령시 불법파견으로 인정하는 2015년 대법원 판례를 파견과 도급 기준에 반영해야 한다”며 “법적 구속력이 없는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을 상위법령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2007년 해당 지침을 마련한 뒤 개정 없이 적용하고 있다.

이 밖에 인권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 개념 확대나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규정 마련을 통해 사내하청 노동자 노동 3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대 노총 “권고 이상의 무게로 받아야”=이번 권고는 그동안 정부정책이 크게 효과가 없었다는 데 기초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국정과제로 제시하면서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에서 “사내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법·제도적 보호방안 마련”을 주요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대선공약에서는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공동 사용자 책임을 지는 한편 '도급과 파견 기준' 마련과 노무도급 금지로 대기업에 불법파견을 근절하겠다고 약속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이번 권고에 대한 노동부 입장을 본 뒤 후속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취약노동자 인권보호와 안전망 확보를 위한 작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환영했다. 이은호 한국노총 대변인은 “인권위 권고는 노동자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과 권리를 확인한 것”이라며 “정부는 권고 이상의 무게로 받아들이고 국회 역시 관련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산재사망 절반 감축이라는 대통령 약속은 말로 이뤄지는 것이 아닌 제도와 정책으로 실현할 수 있다”며 “인권위 권고와 더불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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