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5일 고용노동부에 불법파견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원청의 실질적 지휘·명령시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를 파견과 도급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고, 불법파견에 대한 적극적 지도·감독과 엄중 처벌을 권고했다. 한국지엠 사내하청 노동자·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처럼 이미 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았음에도 노동부의 소극적 시정명령과 봐주기로 비정규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파견과 도급을 구분해야 한다는 판단 기준을 제시한 2015년 대법원 판결(2010다106436) 이후 법원은 여러 차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노동자 손을 들어주면서 불법파견 판단 기준을 확대해 갔다. 특히 자동차 업종의 경우 거의 모든 공정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최근에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직접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간접업무도 원청의 지휘·명령에 따라 작업이 이뤄졌다면 원청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잇따랐다. 지난달 11일 서울중앙지법은 기아자동차 3개 공장의 지게차 수리·도장설비 청소업무 같은 간접공정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했다. 같은달 25일에는 현대모비스 사내하청업체가 아닌 제3 포장업체 공장에서 행해진 수출부품 검수업무를 불법파견으로 본 판결도 나왔다.

그런데 사용자들의 불법파견 위반 혐의를 수사·기소하고, 시정지시를 내려야 할 검찰과 노동부는 여전히 '사용자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아차 화성공장 식당·청소·세탁업무를 제외한 전 공정을 불법파견으로 보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던 노동부가 지난 9월30일 돌연 검찰 기소 내용에 따라 직접고용 시정명령 범위를 대폭 축소해 시정지시를 내린 게 대표적이다. 이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단식농성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점거농성까지 했지만 결과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노동부 직접고용 시정명령에 따라 기아차는 25일 안에 해당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해야 하지만 한 달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 직접고용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 또한 불이행에 따른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았다.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은 "노동부가 법원 판결을 묵살하면서 회사편을 들어 일부 공정에 대해서만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렸는데도, 회사는 그조차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전 지회장은 "국가인권위원회조차 불법파견 관련 노동부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노동부가 얼마나 불법파견을 방치해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며 "노동부가 지금이라도 인권위 권고를 이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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