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5일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를 발표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위험의 외주화 개선 △위장도급(불법파견) 근절 △사내하청 노동자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을 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 요구는 국제기준에 부합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6년 총회에서 “외양상 민법·상법 계약을 통해 고용관계를 은폐하는 ‘위장된 고용관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법적 절차와 조치를 마련하라”는 ‘고용관계에 관한 권고’를 채택했다.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간접고용 노동자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보장 권고를 2008년·2012년·2017년 한국 정부에 했다. 노동자들에게 인권위 권고 의미를 들었다.

 

▲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

권고 이행하도록 청와대가 각 부처 지도·감독하라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는 위험의 외주화 대표사업장으로 꼽히는 발전소 하청노동자가 겪는 불합리함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산업현장 곳곳에서는 김용균들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정책에서 생명·안전업무와 상시·지속업무는 직접고용하라고 명시했다. 그런데 정부는 발전소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경상정비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라는 요구에 귀를 닫고 있다. 인권위는 위험업무를 도급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용균 노동자가 일했던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뿐만 아니라 경상정비 분야도 생명·안전업무로 봐야 한다는 점을 인권위가 다시금 상기시킨 셈이다.

김용균 투쟁 이후 발전소에는 원·하청이 참여하는 안전경영위원회가 가동되고 있다. 현장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청이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원회 미래는 불투명하다. 논의 결과가 나와도 원청이 반드시 이행하리라 장담할 수 없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을 통해 원·하청 교섭을 명시한다면 더욱 실효성 있는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각 기관에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높이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후에도 인권위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게 확인되고 있다. 청와대는 각 부처가 이번 권고를 반드시 이행하도록 지도·감독해야 한다.

 

▲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 사람)

위장도급 문제 해결하려면 파견 범위 축소 해야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 사람)

위험의 외주화가 하청노동자 산재사망 원인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소위 김용균법)에도 많은 이들이 도급금지 대상사업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노동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노동부는 시행령을 통해 도급승인작업을 4가지 유해물질로 한정했다. 뒤늦게나마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간접고용 노동자 인권 증진 제도개선을 권고한 것은 다행이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을 다시 개정해야 한다. 위장도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고한 내용 중 파견 판단지침을 상위법령으로 규정하기보다는 파견 대상 범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또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에서도 권고했듯이 대법원 판례를 반영한 지침 개정과 파견법 위반 사건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담보할 수 있는 지침과 기준이 필요하다. 노동 3권 보장을 위해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고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자를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부당노동행위 책임자에 대해 처벌의 수준이 약했던 점을 감안하면 법정형을 반드시 상향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부당노동행위 사업장에 대한 강제수사와 신속한 수사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이은호 한국노총 대변인

노동부, 인권위 권고 무겁게 받아들이라
이은호 한국노총 대변인

채 스무 살을 맞지 못한 서울지하철 구의역 김군과 스물네 살 태안 화력발전소 김용균씨의 죽음. 그 뒤로도 매일같이 보도되는 ‘비정규 노동자 산재사고’ 기사와 이를 표현하는 ‘위험의 외주화’는 일상의 단어가 됐다.

간접고용은 ‘책임’의 문제다. 일을 맡기(고 지시하)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고, 이를 통해 생겨 난 이윤에 대한 분배의 ‘책임’도 갖지 않으며 행여나 산재가 나도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사용자의 놀부 심보가 ‘간접고용’이다. 이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간접고용 노동자의 죽음이 계속 이어진 것은 정부의 무책임에도 책임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국가인권위원회의 ‘간접고용 노동인권’ 권고는 노동자에게 주어져야 할 지극히 당연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확인한 것이다. 인권위가 고용노동부에 권고한 위험의 외주화 개선, 위장도급(불법파견) 근절, 사내하청 노동자 노동 3권 보장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공동 사용자 책임과 ‘도급과 파견 기준’ 마련, 노무도급 금지로 대기업에 불법파견을 근절하겠다는 것은 대통령의 공약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권위의 권고를 이행하기 위해 공약을 지키면 된다.

그동안 인권위의 권고가 ‘권고’로 끝나는 것을 숱하게 봐 왔다. 이번만큼은 정부는 인권위의 권고를 '권고 이상'으로 무겁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 김형석 민주노총 대변인

대단한 노력은 필요 없다
김형석 민주노총 대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5일 제도개선을 권고한 △위험의 외주화 개선 △불법파견 근절 △사내하청노동자 노동 3권 보장 등은 결국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 3권이 노동조합으로 구현돼야 함을 보인다.

인권위가 정확히 지적했다시피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해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산재사고 원인은 정부와 국회가 조장하고 묵인한 비정규직 폭증, 그리고 이들에게 권리는 빼앗고 책임과 의무만을 떠넘기는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는 사용자 행태에 있다. 개별 기업보다는 사회구조 문제이므로 제도적 강제와 주체별 노력이 필요하지만 전망은 우울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개선은커녕 전면개정 이후 하위법령 제정 단계에서 무력화되고 있고, 검찰과 고용노동부의 자의적 불법파견 판단의 근거가 됐던 ‘지침’의 상위법령 규정은 개악하기에도 바쁜 정부와 국회가 언감생심 제도적 강제에 나설까 싶다.

한 달에 산재로 200명씩 죽어 나가는 절박하고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와 국회는 개악이 아닌 한 제도적 강제를 할 수 없다면, 하다못해 자구책이라도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의 가장 강력한 자구책은 노동조합이다. 노조에 가입하고, 교섭하고, 투쟁하는 최소한의 권리만 보장해도 조선소 산재사망자의 90%를 차지하는 하청노동자 처지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

대단한 법 제정도 필요 없다. 이미 국회로 넘어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사회적 모색에 나서야 한다. ‘타다’ 대표는 불법파견 논란에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항변했지만, ‘타다’ 노동자가 대체 누구와 어떻게 교섭할지 답하지 못한다면 그저 말뿐인 ‘노오력’에 그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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