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고용노동부는 8월8일 ‘법령 위반으로 발생한 사고의 업무상재해 인정기준’(지침)을 신설했다. 이를 바탕으로 근로복지공단은 10월1일자로 세부 기준을 마련했다. 노동부는 지침을 통해 법령 위반으로 발생한 사고의 실무처리 과정에서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 상이하게 판단하는 사례가 발생해 효율적인 업무처리 판단지침을 마련했다고 밝히고 있다.

지침은 범죄행위에 대해 고의·중과실과 경과실로 구분해서 판단하면서 법령 위반으로 발생한 사고는 업무상재해로 불승인하되, 불가피한 사유가 있음을 당사자가 입증한 경우에는 업무상재해로 승인한다고 한다. 이를 각 도로교통법 위반, 폭행행위 사고, 경범죄 처벌법 위반행위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지침의 가장 큰 문제는 중과실 제도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전면적으로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재보험법은 국민건강보험법·공무원연금법과 달리 중과실 제도를 두고 있지 않다. 즉 지침에서 근거로 삼고 있는 국민건강보험법 53조(급여의 제한), 공무원연금법 63조(고의 또는 중과실 등에 의한 급여의 제한)는 각 법령 규정을 두고 있지만, 산재보험법은 중과실 관련 조항이 없다.

산재보험법 37조2항은 “근로자의 고의ㆍ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ㆍ질병ㆍ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산재보험법 37조2항은 ‘업무상재해 인정기준’ 조항이며, 국민건강보험법(53조)·공무원연금법(63조)은 ‘급여 제한’ 조항이다. 인정기준과 급여 제한 규정은 그 취지가 전혀 다르다. 또한 공무원연금법 63조3항의 중과실에 해당하더라도 사실상 급여의 반액이 지급되는 현실을 볼 때도 노동부 지침으로 산재보험급여를 전면 수급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

둘째, 지침은 도로교통법 위반행위 사고 중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교통사고처리법) 3조2항의 12대 중과실 행위로 발생한 사고의 경우 업무상재해에서 배제하고 있다. 다만 12대 위반행위에 해당하더라도 사고발생 회피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경우를 증명한 경우에는 예외로 두고 있지만, 이를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교통사고처리법 3조2항의 12대 수칙 위반행위는 공소의 제기를 위한 규정으로서, 산재보험법에서 규정하지 않은 ‘중과실 행위’로 단정하기 어렵다. 법원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사망 등이 발생한 경우라 함은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사망 등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지, 간접적이거나 부수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17. 4. 27. 선고 2016두55919 판결)거나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산재보험법에 의한 급여지급책임에는 과실책임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대법원 2010. 8. 19. 선고 2010두4216 판결)고 판단한다.

대법원은 12대 중과실 행위를 일률적으로 업무상재해에서 배제하지 않았고, 오히려 “음주운전이라 해서 바로 업무수행행위가 부정되는 것은 아닌 데다가 교통사고는 망인의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점 등에 비춰 보면 이 사건 교통사고가 통상적인 운전업무 위험성과는 별개로 오로지 망인의 음주운전이 원인이 돼 발생한 것이라고 볼 만한 뚜렷한 자료가 없는 이상 위 망인의 사망은 업무수행 중 그에 기인해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1. 7. 27. 선고 2000두5562 판결). 하급심뿐만 아니라 실무에서도 12대 중과실 행위를 업무수행 중 사고로 인정해 왔다.

결국 12대 수칙 위반행위를 일률적으로 중과실로 봐 사실상 업무상재해에서 배제하는 것은 위법한 해석이다. 당해 행위가 업무에 수반되는 위험 범위 내에 있었는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을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특히 고의·자해행위와 동일한 가치로 평가될 수 있는 범죄행위 여부에 관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지침의 예시처럼 8차선 무단횡단 사고는 중과실로, 4차선은 경과실로 보는 기계적 해석의 오류로 귀결될 뿐이다.

셋째, 지침은 폭행행위 등의 사유만으로 바로 업무상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지 않으나, 업무관련성은 ① 회사에서의 업무처리 방식과 관련된 다툼인지 여부 ② 폭행 발생원인 ③ 폭행장소(회사 내부) ④ 사적인 원한관계 여부 등을 조사·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네 가지 사항 중 회사 내부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수많은 판결례에서 이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규정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출퇴근재해가 도입되기 이전에도 노동부는 당시 입법안으로 중과실을 산재보험법에 명시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당시에도 많은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결국 법이 아닌 행정부 지침으로 중과실 제도를 산재인정 기준으로 정한 것은 산재보험법 취지를 형해화하고 법령의 제정 권한을 가진 입법부의 영역을 명백히 침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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