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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적자를 바라보는 노동운동의 태도

기사승인 2019.11.14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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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올해 9월 말까지 재정수지가 역대급 적자를 기록했다. 통합재정수지가 26조원, 관리재정수지가 57조원 적자다. 보통 하반기에 조정이 있기 때문에 최종 적자는 이보다는 줄 것이다. 그럼에도 세입 감소분을 감안하면 올해 재정적자는 세계금융위기가 있었던 2009년 이후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일제히 정부가 재정 중독에 걸렸다며 비판을 쏟아 냈다. 청와대는 “곳간에 재정을 쌓아 두면 썩는다”며 경기하강에 재정확장으로 적극 대응하는 것이 옳다고 반박했다.

노동운동은 정부가 돈을 써서 사회복지를 늘리는 것에 호의적이다. 세입에 대한 고려보다는 복지지출 확대를 강조하는 것이 진보진영의 오래된 태도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태도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성장-고령화라는 장기 흐름을 감안하면, 보수세력의 균형재정에 대한 강박보다 오히려 진보세력의 재정적자에 대한 우호적 태도가 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조세를 더 거두거나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상위소득자가 하위소득자에게 소득을 이전하는 재분배 효과가 발생하고, 후자의 경우 현세대의 비용을 후세대가 지불하는 세대 간 이전효과가 발생한다. 전자의 대표적 사례는 국가채무 증가 없이 재정지출을 늘리는 스웨덴이고, 후자의 대표적 사례는 국가채무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본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증세 없는 복지를 강조하고 있어 전자보다는 후자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국채로 정부지출을 늘리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기업의 경우 부채를 늘려 미래 사업기회를 잡는 것을 레버리지(지렛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기침체 기간을 줄이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재정적자를 늘린다면 결과적으로 후세대에 이득이 될 수 있다. 재정적자의 선순환이다. 그런데 문제는 반대의 경우다. 국채로 재정지출을 늘렸는데, 국채 이자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 실적이 나쁘면 적자가 또 다른 적자를 낳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악순환이 이어지면 세대 간 정의 문제가 첨예해지는데, 적자로 인한 혜택은 현세대가 누리면서 적자 비용은 후세대가 책임지기 때문이다.

저성장-고령화라는 불가항력적 조건은 재정적자의 선순환보다 악순환과 친화적이다. 성장이 안 되면 후세대 소득이 증가할 수가 없고, 고령화가 계속되면 적자의 혜택을 입는 사람은 늘어나고 비용을 대는 사람은 줄어든다. 추격성장의 한계와 세계경제 침체로 인한 한국경제 저성장은 노력한다고 당장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출산 역시 뿌리 깊은 사회구조와 연관된 문제로 어떤 전문가도 단기간에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장기간은 아니더라도 당분간 재정적자를 늘리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40% 미만으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것이 그 근거다. 하지만 이는 그다지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국가채무 비율이 높은 나라들은 미국(104%)과 일본(237%), 유로 국가(85%)처럼 오랜 기간 정부 신뢰를 바탕으로 자국 화폐를 세계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나라들이다. 한국과 비슷하게 무역비중이 높고 기축통화가 아닌 화폐를 사용하는 나라들은 스웨덴(38%)·호주(41%)·대만(35%)처럼 국가채무 비율이 50%를 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장기금 흑자로 지금까지 그럭저럭 국가채무 비율을 유지했지만, 이것이 역전되면 단숨에 통합재정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는 구조다. 한 방에 훅 가는 것이 우리나라 재정구조다.

한편 국가채무 수준은 화폐 안정성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관리통화제도의 화폐는 국가지불능력에 그 가치를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채무 증가로 국가지불능력에 의문이 생기면, 화폐가치가 폭락한다. 남미에서 반복되는 화폐위기가 그런 사례들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화폐가치는 중앙은행 자산가치에 대응한다. 100조원의 화폐를 발행하려면 100조원 가치가 되는 중앙은행 자산이 있어야 한다. 미국·일본 같은 나라들은 중앙은행 자산을 국채로 구성한다. 국채 상환에 쓰이는 자국 시민들의 세금이 화폐가치를 지탱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한국은행 자산은 한국 국채가 아니라 미국 국채 같은 국외증권으로 구성돼 있다. 복잡한 과정이지만 간단하게 말해, 한국은행이 수출기업이 벌어 온 달러를 가지고 자산을 채워서 원화가치를 지탱한다. 외환위기 이후 국가지불능력에 대해 국내외 신뢰가 사라져서 이렇게 됐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수출기업 부진이 곧바로 원화가치 위기로 전화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요컨대 한국의 적정 국가채무 수준은 수출기업의 국제경쟁력에 따라 상승할 수도 하락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반도체 정도를 제외하면 수출기업들의 미래 경쟁력에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수출기업 경쟁력과 화폐가치가 연결돼 있어 쉽게 국가채무 수준을 높이자고 주장하기가 어렵다.

노동운동은 이런 정세조건 때문에 세대 정의와 국가경제 지속가능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 특히 노동운동은 세대 정의에 약점이 있는데, 노동운동의 성장이 대부분 고성장-인구증가 상황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세대 문제에서 기득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착한 적자’ 같은 미사여구로 현재의 재정적자를 옹호하는 것은 기득권 강화에 불과하다. 세대 부정의는 청년 친화적 조직문화나 청년 조직화에 힘을 쏟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필자는 노동운동이 세대 간 정의의 경제적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세대는 후세대에 성장의 과실을 주지 못한다. 그러니 빚도 넘겨주지 말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적자재정보다 균형재정이 차라리 낫다고 볼 수도 있다. 필요한 복지는 세대 내 재분배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더불어 현세대 임금보다는 후세대 임금을 증가시킬 수 있는 임금체계 개혁이나, 일자리를 두고 현세대와 후세대가 경쟁하지 않도록 하는 여러 개혁에 힘을 쏟아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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