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홍콩 사태를 광주항쟁에 비교하는 언론 기사들이 넘쳐 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홍콩은 광주가 아니다. 1987년 6월 항쟁도 아니다. 역사적으로 홍콩에 자유민주주의운동이 활발했고 홍콩 사태가 민주화 요구로 시작한 것은 맞지만, 미국의 불법적 개입 이후 폭력적인 반중-친미 운동으로 변질됐다. 80년 광주에서 시위대가 버스정류장에 방화를 하고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대학에서 몰아낸 적은 없다. 87년 6월 항쟁에서 시위대가 역에 불을 지르고 매표기를 때려 부수고 지하철 운행을 방해하고 시위에 나서지 않는 학생들을 대학에서 몰아낸 적은 없다.

홍콩 사태를 바라보는 원칙은 분명하다. 84년 12월 영국의 마거릿 대처와 중국의 덩샤오핑이 합의한 '일국양제'다. '일국' 원칙은 홍콩이 중국 영토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홍콩 독립 주장은 허황하기 짝이 없다. 홍콩 독립 주장이 일관성이 있으려면 영국에서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독립, 스페인에서 바스크와 바르셀로나의 독립, 미국에서 인디언들의 독립을 인정해야 한다.

홍콩 독립 주장이 일관성이 있으려면 인도네시아에서 아체와 파푸아의 독립, 일본에서 오키나와의 독립, 인도에서 카슈미르의 독립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터키와 이라크에서 쿠르드족의 독립을 인정해야 한다. 분단과 전쟁으로 한반도 남반부에 고립돼 살아온 대한민국 국민의 폐쇄적 민족감정으로 재단하기에 세계는 우리 상상보다 훨씬 넓고 국제 정세는 우리 상식보다 훨씬 복잡하다.

'양제' 원칙은 홍콩이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 오던 자본주의 체제를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원칙에 기반해 2047년까지 유지하는 것이다. 중국은 국가 주도 시장경제로 글로벌 자본주의에 통합돼 있기 때문에 홍콩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지난 150년 동안 자본주의 체제가 홍콩 경제에 끼친 폐해는 세계 최고의 주택난과 빈부격차라는 문제를 일으켰다. 사실 홍콩 사태 배경에는 이러한 사회·경제적 모순이 주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홍콩에서 시위대가 흔드는 미국 성조기의 정치적 의미와 서울에서 극우 시위대가 흔드는 미국 성조기의 정치적 의미는 동일하다. 그것은 미국의 무모한 개입을 바라는 무정부적 광란이지 민주주의와 인권과는 무관하다. 80년 광주 민중을 돕기 위해 미해군 항공모함이 오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광주 민중을 구원하러 오는 미군은 없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미국 정부와 미국 군부는 광주 민중을 잔인무도하게 학살한 전두환 일당을 지지하고 지원함으로써 반미운동의 무풍지대였던 남한에 반미운동이 정착할 근거를 제공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미명하에 미국 정부와 미국 군부가 자행한 군사적 개입과 전쟁은 지구를 지옥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리비아·시리아 등 미국의 '지지와 지원'으로 지옥이 된 나라의 명단은 끝이 없다. 대한민국은 다르지 않느냐는 주장도 터무니없기 짝이 없다. 미군의 개입으로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났을 때 대한민국은 잿더미의 최빈국이었고 미국은 이승만 독재정권을 지지해 한반도 남단을 지옥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승만 독재 체제를 끝장 낸 것은 미국 정부나 미국 군부가 아니라 남한 민중의 투쟁이었다. 61년 박정희 일당이 반공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키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도 미국 정부와 미국 군부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박정희 집권 18년은 정치적 살인과 고문과 납치와 탄압이 일상이던 체제였다. 입 다물고 노예처럼 살면 배부름을 보장받고, 자유민주주의가 보장한 '자유'를 주장하거나 요구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미국 정부와 미국 군부는 79년 12월 전두환의 군사정변도 지지하고 후원했다. 전두환 군사독재를 끝장 낸 것은 미국이 아니라 남한 민중이었다. 미국 정부와 미국 군부는 일본총독부가 한반도에 창설한 근대적 독재 체제와 고문 체제와 억압 체제를 한반도에 뿌리내리게 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릴 때 미국은 팔짱을 끼고 방관하거나 한술 더 떠 독재정권의 학살과 탄압을 지원했다.

홍콩 사태 같은 폭력 사태가 워싱턴이나 뉴욕 같은 미국 대도시에서 몇 달째 계속됐다면 미국 경찰과 미국 군대는 여태까지 홍콩 경찰과 중국 군대가 보여 준 자제력을 발휘했을까. 미국 경찰은 시위대에 실탄을 쏟아붓는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을 것이고, 미국 군부는 대도시 곳곳에 장갑차로 무장한 특수부대를 배치시켜 계엄 상황을 만들었을 것이다. 영국이나 독일 같은 유럽 국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80년대 시위대와 진압경찰 사이에 벌어지던 폭력 사태를 직접 경험한 이로서 홍콩 경찰의 대응은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경찰이 보이던 야만적 행태와 비교할 때 공권력의 무자비한 사용을 자제하려는 티가 역력하다.

광주나 87년을 제대로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 문제에 대해서는 더더욱 문외한인 '어린' 언론인들이 표피적으로 파악한 정보만 갖고 홍콩을 광주에 비유하면서 민주주의 투쟁으로 포장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조국 사태에서 설치던 '기레기'들이 갑자기 홍콩 사태에서 진정한 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남한의 민주주의 체제를 혐오하고 군사독재 체제의 부활을 바라는 일본과 미국의 극우세력들은 홍콩 사태를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투쟁으로 포장하기 바쁘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운동은 지지하지만, 냉전 식민주의 체제로의 반동을 꿈꾸는 친미-친영 운동은 지지할 수 없다. 홍콩 사태는 평화적 민주화운동에서 폭력적 친미-친영 운동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홍콩의 미래는 불행해질 것이며,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는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홍콩 사태는 하루빨리 평화적으로 종결돼야 한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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