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지난달 29일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렛츠런파크 부산경남)에서 경주마를 탔던 기수 문중원씨가 목숨을 끊었다. 그는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답답하고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는 말로 시작하는 세 장짜리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기수 시절 겪은 부당한 대우와 조교사 면허를 받은 이유, 면허 취득 뒤에도 친분에 따라 마방을 배정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자비 들여 가며 호주에서 말도 타 보고 영국까지 가서 조교사 트레이닝 코스도 이수하고 일본 연수도 다녀왔다"는 문씨. 조교사를 꿈꾸던 그가 정작 꿈을 이룬 뒤 이생을 등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왜 꿈을 이룬 뒤 되레 절망했을까.

2일 마사회와 노동계에 따르면 마사회는 마구간 25개 내외로 이뤄진 마방을 조교사에게 임차한다. 마방은 경주에서 받은 상금과 위탁관리비로 운영하는데 이들 조교사가 마필관리사 채용과 기수 섭외 권한을 가진다. 조교사가 이들의 생계를 쥐락펴락하는 구조다.

조교사가 돼도 마방 임차를 받기가 쉽지 않다. 서울과 제주·부산경남 경마공원에서 마방이 없는, 즉 개업하지 못한 조교사가 17명이다. 개업한 조교사가 94명인 것을 감안하면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이다. 마사회가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최상층에 있는 모양새다.

문씨가 "죽기 살기로” 조교사가 되려고 한 이유는 먹이사슬 가장 아래에 있는 기수 처우 때문이다. 그는 유서에서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고 거절할 경우 조교사 눈 밖에 나 출전 기회가 줄었고 좋지 않은 컨디션의 말을 제공받았다고 하소연했다. 기수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말을 탈 경우 사고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뻔히 알지만, 출전금을 받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경기에 나선다.

문씨는 2015년에는 조교사 면허를 취득했지만 4년이 지나도록 마방을 배정받지 못했다. 문씨는 "고위관리와의 친분으로 자신보다 늦게 조교사 면허를 획득한 이들이 마방을 배정받거나, 마방 배정을 약속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취지로 유서를 남겼다. 그는 "조교사가 시키는 대로 충성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그저 나가라고만 한다"며 "지금까지 힘들어서 나가고, 죽어서 나간 사람이 몇 명인데, 정말 웃긴 곳이다. 경마장이란 곳은"이라고 썼다.

2006년 개장한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지금까지 기수 4명과 마필관리사 2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이 유서에서 언급한 마사회의 불법과 부조리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라"고 촉구했다. 노조와 유족은 △조교사 제도 개선 △경마 기수의 적정생계비 보장 △기승 기회 적정수 보장을 요구했다. 유족은 진상규명이 이뤄지기 전까지 고인의 장례를 치르지 않을 방침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고인의 유서에 언급된 부정 경마와 (조교사) 개업 비리 의혹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라며 "최대한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사회는 고인의 유서에서 조교사 개업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언급된 김아무개 경마처장을 지난 1일 대기발령 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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